[책마을] 현대 세계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인구'

입력 2019-12-05 17:06   수정 2019-12-06 00:40


토머스 맬서스가 <인구론>을 펴낸 1798년은 영국 인구가 한창 늘어나던 시기였다. 맬서스는 인구 증가가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번영을 가져올 것이란 낙관론을 부정했다. 되레 인구 과잉이 식량 부족을 초래해 인류가 기아와 빈곤에 허덕일 것이라는 비관론을 폈다. 당시 700만 명이던 영국 인구는 지금 6644만 명에 이른다. 220년 만에 아홉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세계 인구도 급팽창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2000여 년 전 세계 인구는 약 2억5000만 명, 19세기 초엔 약 10억 명이었다. 불과 네 배 증가한 것이다. 이후 200년간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재 약 76억 명에 이른다. 인류사에서 19세기와 20세기는 ‘인구혁명의 세기’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맬서스의 주장대로 식량 부족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구통계학자인 폴 몰런드 런던대 연구원이 인구 변동으로 세계사를 해석한 <인구 물결(Human Tide, 퍼블릭 어페어스)>이 미국 서점가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세계를 만든 변화의 기저에는 약 200년 전부터 전개된 인구혁명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구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영국 인구는 18세기 중반 이후 급격하게 불어났다. 전염병이 줄고 위생의식이 확산됐으며 농업혁명이 일어났다. 중국 차의 보급이 사람들의 건강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보고도 있다.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다산다사(多産多死)’에서 ‘다산소사(多産少死)’의 사회로 급격하게 이행된 것이다. 영국에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식민지로 인구가 많이 이동했지만 인력 수급에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빠져나간 사람보다 더 큰 인구 증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구 증가가 이민을 불러오고 대영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영국만큼 인구가 늘지 않아 식민지 경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영국 인구혁명의 패턴을 이어받은 건 독일이다. 독일 인구는 1800년께 2500만 명에서 1870년 4000만 명, 1913년엔 67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환경 개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인구 급증은 1871년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고, 독일의 경제력에도 크게 기여했다. 1880년 영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던 독일 제조업이 1913년 영국보다 우위에 있도록 한 것도 인구 증가의 힘이었다. 인구 혁명의 흐름은 러시아로 이어진다. 러시아의 인구 급증은 19세기 활발한 영토 확장을 통해 인구를 늘린 것도 있지만 농업의 발전이 한몫했다. 저자는 이런 인구 혁명의 과정을 통틀어 근대화로 설명했다.

인구가 늘어나자 가족 구조가 달라지고 개인화가 진전됐다.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개인화는 다산소사에서 소산소사(少産少死) 사회를 유도했다. 인구 감소는 영국에서 먼저 시작돼 독일과 러시아로 이어졌다. 후발 국가일수록 다산다사에서 다산소사로, 다시 소산소사로 이어지는 패턴이 빨라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서양과는 패턴이 달랐다. 원래 소산 전통이 있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영양이 개선되고 건강상태가 나아지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1, 2차 세계대전은 일본 인구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일본은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도 낮아지면서 급격하게 소산소사 국가로 접어든다. 해외로 이주하거나 일본으로 이민을 오는 사람이 없어 인구 감소는 필연적이었다. 저자는 일본의 경제적 역동성이 줄어드는 것과 인구 감소가 맞물려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인구 변동 패턴도 주목할 만하다. 1920년 한국에선 열 명 중 세 명이 한 살 이전에 사망했다. 현재 한국의 영아사망률은 1000명에 세 명도 채 안 된다. 위생환경 개선과 산업화·도시화가 일군 성과다. 그 사이 다산다사에서 다산소사 사회로 급격하게 이행했다. 이런 인구 증가가 한국을 군대 병력이 많은 군사 강국으로 만들고 경제 성장을 일군 동력이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인구 감소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현대 세계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이념이나 경제가 아니라 인구라고 설명한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결국 인구에서 나온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보수주의가 힘을 얻고 인구가 늘어나면 진보주의가 득세한다. 그는 “인구는 정치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인위적인 인구 정책보다 사회 인프라 개선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오춘호 선임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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