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한국선 왜 슈뢰더·마크롱 안나오나

입력 2019-12-26 10:21   수정 2019-12-26 11:10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한국과의 인연이 유독 깊습니다. 한국을 자주 찾아 여러 정치적 조언을 내놓고 있지요. 작년엔 한국인 통역사인 김소연 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었던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작년 말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사회 경제 전반을 개혁하는 ‘아젠다 2010’을 추진했다. 표를 좇는 정치꾼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독일 경제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도 슈뢰더와 같은 정치인들 덕분이다.”고 평가했습니다.

슈뢰더 전 총리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했던 ‘하르츠 개혁’은 노동의 유연성을 높여 독일 경제를 살렸습니다. 노조 우려와 달리 결과적으로 투자와 고용이 급증했지요. 다만 슈뢰더 전 총리는 자신이 예상했듯 당시 총선에서 패배했습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청와대와 여당을 향해 “정권을 잃을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로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포괄적 개혁을 하다 보면 의석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지요.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행 연금 체제로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만큼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이 불가피하다”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퇴직 후 받게 될 연간 3억원의 각종 연금 혜택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요.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에 나선 것은 매우 오랜만입니다. 25년 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노조 등 반발에 부딪혀 접어야 했습니다. 당시 개혁하지 못한 연금 제도는 지금 세대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구요.

연금 개혁에 대한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듯합니다. “국가 미래를 위해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불가피할 듯합니다. 원래 더 주기로 했던 걸 줄이면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오게 되지요. 개혁엔 언제나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나라의 연금 제도는 프랑스나 독일보다 심각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이들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기 때문이죠.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지금의 젊은층(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보험료는 현행 대비 3배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인구구조 악화에 따라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예상입니다. 지금 개편을 서두르지 않으면 미래 세대는 월급의 절반을 연금 보험료로 납부해 노인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금 개혁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정부가 작년 말 보험료율 인상 등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을 내놓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며 퇴짜를 놨습니다. 내년 4월 총선, 2022년 5월 대선 등이 줄줄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책임있게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청와대와 정부, 국회는 지금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요.

국민연금은 우리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져 줄 ‘마지막 보루’입니다. 누군가 앞장 서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담을 평생 져야 합니다. 개혁을 늦출수록 기성 세대가 그 만큼 이익을 보는 구조이구요.

우리나라에선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국가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겠다는 정치인이 왜 나오지 않을까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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