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형의 데스크 시각] '기생충', 봉준호 그리고 대학로

입력 2020-02-19 18:44   수정 2020-02-20 00:16

공연 취재를 오래 담당한 덕분에 많은 배우를 TV나 스크린에 앞서 무대에서 만났다.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는 1996년 서울 대학로의 한 허름한 2층 건물에서 처음 봤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연출가 박광정의 옆자리에 앉아 송강호와 이대연, 박원상, 최덕문, 오지혜가 거의 뒹굴다시피 하며 공연 리허설을 하는 현장을 지켜봤다. 이들 개성파 배우 5인방이 멋지게 호흡을 맞춘 풍자극 ‘비언소’는 그해 대학로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 역을 해낸 이정은을 처음 본 것은 2013년 뮤지컬 ‘빨래’ 무대에서다. 달동네 다세대주택의 주인으로 분한 이정은은 전라도 사투리를 구성지게 구사하는 욕쟁이 할매 그 자체였다. 젊은 배우들을 이끌며 극의 중심을 잡아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봉준호 영화의 자양분, 대학로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란 ‘기생충’의 기적 같은 성취를 낳은 원천과 토양을 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여기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한국 연극계의 심장’ 대학로다.

‘기생충’이 미국에서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받은 상은 아카데미 작품상 외에 또 있다. 미국배우조합상(SAG)의 작품상 격인 앙상블상이다. 미국 배우들은 ‘기생충’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높이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를 중심으로 모든 배우가 한 덩어리가 돼 마치 핵융합을 하는 듯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기생충’ 배우들이 보여준 놀라운 ‘케미’는 서로 호흡을 읽어내고 맞춰야 하는 무대에서 쌓은 연기 공력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대학로는 K드라마, K무비 등 ‘콘텐츠 한류’의 자양분이 돼왔다. 그동안 한국을 세계에 알린 드라마와 영화에서 빼어난 연기를 펼친 대학로 출신 배우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캐스팅뿐만이 아니다. 대학로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감독에게 창작의 영감을 줬다. 봉 감독이 대표적이다. 그의 출세작이자 세계에 봉준호 마니아를 만들어낸 ‘살인의 추억’은 원작부터 1990년대 대학로의 대표작 ‘날 보러 와요’다. 이 연극의 원년 멤버인 류태호와 김뢰하는 ‘살인의 추억’에서도 명연기를 펼쳤다.

'한류 원천' 연극 지원 강화해야

하지만 한류 열풍과 달리 최근 몇 년간 대학로의 창작 분위기는 블랙리스트 파동과 미투 파문 등으로 무척 어둡다. 연극은 본래 창작·제작 여건 등이 가장 열악한 순수예술 분야다. ‘기생충’의 ‘지하실 남자’ 박명훈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대학로에서 17년간 연극을 했는데 1년에 평균 100만원도 못 벌었다”고 말한 것처럼 대다수 배우가 연기 활동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많은 연극인이 악전고투하며 창작 활동과 무대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연극 등 순수예술은 공공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프로그램 등 정부 지원이 실제로 이뤄지고 성과도 내지만 수요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하다. 콘텐츠 한류의 원천이자 문화 생태계의 기반인 공연예술 창작을 더욱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사업 확대가 절실하다.

정부는 올해를 ‘연극의 해’로 지정했다. 하지만 당초 기획한 73억원의 예산이 최종 21억원으로 축소됐고 공론화 과정도 늦어졌다. 그 바람에 관련 사업이 일러야 다음달에나 시작된다고 하니 기대보다는 한숨이 앞선다. 순수예술은 가뜩이나 한류를 주도하는 콘텐츠산업에 온갖 관심이 쏠리면서 뒷전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더 많이 신경써야 할 때다.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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