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경쟁시장 넘어 대박 난 '마형사의 왕갈비통닭' 미투 브랜드가 없다니…이것은 '치킨집 판타지'인가

입력 2020-02-28 17:16   수정 2020-02-29 15:20


매일 밤낮 구르고 뛰지만 언제나 허탕만 치는 마약수사반.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던 순간, 팀의 리더 고반장(류성룡 분)은 거대 범죄조직의 마약 밀반입 정황을 포착하게 된다. 마약수사반은 조직의 아지트 앞에 치킨집을 차리고 잠복수사를 시작한다. 치킨을 팔면서 정체를 들키지 않고 범인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업 첫날 곧바로 위기에 맞닥뜨린다. 첫 손님의 주문 음식이 다름 아닌 양념치킨이었던 것. 주방을 맡은 마형사(진선규 분)는 프라이드치킨밖에 튀길 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마형사는 부모님 식당(수원왕갈비)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왕갈비 양념을 급하게 만들어 치킨을 내기로 한다. 노릇하게 익어가는 치킨, 그리고 그 위에 끼얹어지는 달짝지근한 왕갈비 양념. 마형사 표 왕갈비통닭이 손님 앞에 놓였다. 모든 직원들, 아니 형사들은 침묵한 채 마수걸이를 지켜본다. 손님이 치킨을 베어 물었다. ‘바삭’ 소리가 난다. 나지막이 손님이 읊조렸다. “오, 대박인데?”

완전경쟁시장과 독점적 경쟁시장

정말 대박이 났다. 왕갈비통닭이 입소문을 타자 손님이 물밀듯 밀려왔다. 마약반 형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주문받고 튀기고 서빙해야 했다. 손님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하나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던 치킨을 맛보기 위해서다. 왕갈비통닭의 대박은 독점적 경쟁시장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다. 경제학에선 다수의 경쟁자가 참여하는 시장을 완전경쟁시장과 독점적 경쟁시장으로 구분한다. 경쟁자가 없거나 소수인 독과점을 제외하고선 세상엔 이 두 가지 유형의 시장만 있을 뿐이다. 완전경쟁시장은 1)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참여하고, 2)기업이 자유롭게 진입·퇴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기업은 3)동질한 상품을 공급하며 경쟁한다. 흔히 쌀집, 우유가게가 여기에 속한다.

독점적 경쟁시장도 1)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참여하고, 2)기업의 자유로운 진입·퇴출이 가능하다. 여기까진 완전경쟁시장과 같다. 하지만 3)공급자마다 각자 차별화된 상품을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차별화된 상품을 파는 영화시장, 미용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이는 경제학에서의 구분일 뿐 현실에서는 칼로 베듯 나뉘지 않는다. 고시히카리 쌀, 무항생제 우유같이 어느 상품이든 차별화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만드는 상품의 차별화 정도에 따라 기업은 완전경쟁시장과 독점적 경쟁시장 그 어느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 만약 고반장네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프라이드와 양념치킨만을 팔았다면 이들은 완전경쟁시장 가까운 곳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왕갈비통닭집의 캐치프레이즈를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차별화 상품을 선보였다. 독점적 경쟁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독점적 경쟁시장의 가격 결정권

독점적 경쟁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가격결정권이 생겼다는 의미와도 같다. 이는 기업이 맞닥뜨리는 수요곡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완전경쟁시장의 기업엔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완전 탄력적’인 수요그래프가 주어진다. 완전 탄력적 수요란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수요량이 전부 달아난다는 개념이다. [그래프1]의 A점에서 생산하던 기업이 가격을 P1로 올려버리면 이 그래프에선 수요가 0(B점)이 된다. 완전경쟁시장에선 대체재가 사방에 널려 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다른 가게로 떠나기 때문에 수요가 완전탄력적이다. 따라서 완전경쟁시장에 놓인 기업엔 주어진 가격(P) 외에 선택지는 없다. 가격결정권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독점적 경쟁시장의 기업은 ‘비탄력적’인 수요그래프를 갖게 된다. [그래프2]의 C점에서 생산하던 기업이 가격을 P2로 올리면 생산지점이 D로 이동한다. 수요량은 조금 줄어들 뿐이다. 상품의 대체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화 수준이 높을수록 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많이 줄지 않으니 가격결정권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수입은 ‘가격×수량’이다. C와 D의 수입을 따진다면 단연 D의 수입이 높다.

영화에서 왕갈비통닭집도 독점적 경쟁시장 전형을 보여준다. 장사가 너무 잘돼 본업인 잠복수사를 못하게 될 지경에 이르게 된 고반장네는 치킨 한 마리의 가격을 3만6000원으로 올려버린다. 가격을 올려 손님을 내쫓으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줄지 않는다. ‘황제치킨’ ‘허세치킨’으로 별명이 붙으며 계속해서 잘 팔린다. 왕갈비통닭에 대한 수요 그래프는 매우 비탄력적이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격을 올리면서 고반장네는 더 큰 수입을 벌어들이게 된다.

왕갈비통닭, 실제 있었다면 흥행 지속됐을까?

상품 차별화를 통해 독점적 경쟁시장에 진입하는 모든 기업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독점적 경쟁시장에서도 ‘기업의 자유로운 진입·퇴출’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독점적 경쟁시장에서 누군가 차별화된 상품으로 이익을 보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금세 ‘베끼기 상품’을 만들 것이다. 다수의 경쟁자가 생긴다면 개별 기업의 수요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수요 그래프가 원점으로 더 붙어버리는 것이다. 차별화해 초반에 이득을 보는 기업들도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보기 힘들다. 한국 자영업 생태계는 이런 프로세스가 가장 잘 작동하는 곳 중 하나다.

한국 자영업엔 과당경쟁이 일상화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은 25.1%(2018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여덟 번째로 높다. 미국(6.3%) 독일(9.9%) 일본(10.3%) 등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대박 아이템이 생기면 그 시장으로 뛰어들 대기 자영업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만약 왕갈비통닭집이 실존했다면 한국의 자영업 특성상 유사 브랜드들의 치열한 시장 나눠먹기가 이뤄졌을 것이다. 실제로 ‘극한직업’ 영화 이후에 다수의 왕갈비통닭 치킨집이 생겼다.

자영업 문제의 핵심은 과당경쟁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차별화여부와 무관하게 과당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 폐업률(신규업체 수 대비 폐업업체 수)은 89.2%(2018년 기준)다. 2016년 77.7%, 2017년 87.9%에서 계속 증가 추세다. 정부는 다양한 자영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카드결제 수수료 부담을 낮춰주는 제로페이, 최저임금 상승분 일부를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런 식의 정부 대처는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자영업 문제의 근본 원인은 과당경쟁 구조에 있다. 과당경쟁은 일자리 만성 부족에서 비롯된다. 경제를 활성화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일자리가 넘치도록 해야 너도나도 자영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영화 후반부 마약조직의 수장 이무배(신하균 분)가 “치킨집 하면서 왜 목숨을 걸어?”라고 비아냥거리자 고반장은 울컥한다. 그러곤 “니가 소상공인 모르나 본데… 우리는 다 목숨 걸고 해!”라고 소리친다. 오늘도 고생하는 이 땅의 수백만 자영업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장면이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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