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50년 만에 부활한 日 '정한론'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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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3-05 17:00   수정 2020-03-06 03:08

[책마을] 150년 만에 부활한 日 '정한론' 망령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55년이 지났지만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일본의 수출 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모두 55년 전 한·일 협정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협정 체결을 주도한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는 외할아버지와 외손자 관계다. 두 사람은 150년 동안 일본 극우 정치 산실이던 야마구치현(조슈번)이라는 지리적·정치적 기반도 공유하고 있다.

조슈번의 우파 정치가들은 150여 년 전 일본이 마주한 내우외환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다. ‘서양 제국의 침략에 맞서 일본을 지키려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논리를 담은 조선 공략론이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가 쓴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가》는 ‘정한론’이 어떻게 일본 제국주의를 탄생시켰고 현재까지도 극우파들에 의해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책은 단순히 1700여 년 전 진구 황후의 삼한 정복이라는 신화에서 출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조슈번 출신들이 어떻게 정한론을 구체화해 국가 정책으로 발전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정한론에 대한 일본 내부 정책 변화부터 일본이 어떻게 청의 개입을 막고 조선을 계획적으로 정복했는지도 살펴본다.

정한론을 바탕으로 19세기 말 조선과 청의 관계를 떼어놓기 위해 시작됐던 조선 중립화 주장이 1950년대 기시 노부스케의 한반도 중립화 주장으로 이어진 과정도 설명한다. 당시 기시 노부스케는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미국으로부터 자립하고자 하는 ‘아시아주의’를 주창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조슈번 출신 정치가들은 정한론 대신 ‘친한파’를 자처하며 한·일 관계를 다시금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50여 년 후 그의 손자 아베 총리는 군사대국화, 우경화로 나아가려는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저자는 “남북 화해 분위기와 근대 이후 최강의 국력을 보유한 지금이야말로 아베의 ‘21세기 정한론’에 맞서 다시 한번 주체적으로 ‘한반도 중립화’ 실현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종문 지음, 메디치미디어, 344쪽, 1만8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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