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한진칼 분쟁, 양측이 지분 매집 계속하는 이유는...'부실정관' 허점 탓

입력 2020-03-07 07:00   수정 2020-03-07 17:01

≪이 기사는 03월06일(11:0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한진칼의 이사 수가 수십명에 달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전체 직원 수가 32명(작년 9월말 기준)에 불과한 회사지만, 이 회사의 이사회 구성원이 직원 수를 넘어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판국이다.

경영권을 놓고 다투고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KCGI 등 주주연합(3자 연합)은 오는 27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치열한 지분 매집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올 들어 주주연합 측 반도건설은 5.02%, KCGI는 0.54%를 각각 샀다. 그러자 조 회장의 백기사로 추정되는 델타항공이 3.98%(2월20일~3월3일)를 더 매집했다. 이러는 가운데 주가는 작년 말(12월30일 종가 40,000원)에 비해 2배 이상으로 폭등(5일 종가 82,700원)했다. 이제 더 이상 살 주식이 말라가는 형국이다.

◆"정기주총 지면 바로 임시주총 간다"
양측이 지금 사는 지분은 정기 주총에서 쓸 수 없다. 정기 주총에선 작년 12월26일 기준 주주명부를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는 것은 정기 주총의 승자가 누가 되든 곧 임시 주총을 열어 승자가 바뀔 수 있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정기 주총에서 진 쪽은 바로 임시 주총을 소집해서 다시 한 번 붙어보자고 생각할 것이고, 만약 이긴다 해도 임시 주총에서 다시 한번 방어를 준비해야 하니 지분을 더 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임시 주총을 열어도 이사회 구성을 바꾸기 쉽지 않다. 기존 이사회 구성원의 사망이나 질병 등으로 임기 전에 공석이 생기는 경우라면 예외지만, 정상적인 이사 활동을 하는 이사회 구성원을 해임하려면 주총에서 출석한 이들 중 3분의 2 이상(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법이 이사의 해임을 위해선 주총 특별결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출석한 이들 중 과반의 지지로 결정할 수 있는 이사의 선임과 다른 점이다. 지금처럼 양측의 지분율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선 어느 한쪽도 66.7% 이상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

◆임시주총선 해임 없이 추가선임으로 과반 확보해야
따라서 지금 조 회장과 주주연합 측이 기대하는 것은 임시주총에서 '추가 이사'를 선임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기 주총에서 조 회장 측이 기존 이사회 구성원 중 임기가 남은 4명(임기 2019년 3월~2022년 3월)에 7명의 추가 이사후보를 모두 통과(임기 2020년 3월~2023년 3월)시켜서 11명이 된다면, 주주연합은 자신들이 추가로 매집하는 지분이 더 많아진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주주명부가 폐쇄될 수 있도록 하는 시기에 임시 주총을 소집할 수 있다. 임시 주총의 경우 주총 예정일로부터 45일 전을 기준으로 주주명부가 폐쇄된다. 이때 주주연합이 쓸 수 있는 카드는 11명 이상의 후보를 제안해 통과시키는 것이다. 순식간에 이사 수는 22명 이상이 된다.



반대로 이번 정기 주총에서 조 회장 측 기존 이사 4명 외 나머지 추가 인원이 주주연합 측 7명으로 채워진다면, 조 회장은 자신이 유리한 시점에서 임시주총을 소집하여 반전을 시도할 수 있다. 이때 조 회장 측은 최소 4명 이상의 자기 측 인물을 추가로 통과시켜야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양측은 서로 자신이 유리한 시점에서 다시 임시주총을 제안할 수 있는데 해임은 안 되고 추가 선임으로 과반수를 장악해야 하므로 주총마다 이사 인원이 2배씩 늘어나는 구조다. 임시주총의 개최 횟수 등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개별 이사에 대한 찬반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여유'를 두고 인원을 추천하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세번쯤 임시주총이 열리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이 회사의 이사 수는 100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

직원 32명 회사에 이사가 수십명에 이르는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법을 쓸 수 있는 이유는 한진칼이 정관에서 이사회 구성원의 상한을 정하지 않은 대단히 드문 회사이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최초 정관 제안에서 이사 상한을 두지 않았다. 이사회 구성원을 3인 이상으로 한다는 정도의 규칙만 뒀다. 지금 와서 보면 '치명적 실수'였던 셈이다.

◆50% 확보하거나 대타협 선언도 가능
이사의 선임보다 해임을 더 까다롭게 만든 것은 이사회의 안정성을 고려한 것인데, 상한이 사라져서 무한정 추가 이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다. 이는 어느 한쪽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양날의 검이다. 쌍방 모두 한 번의 주총에서 이긴다고 해서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다만 추가 지분 매입이 영원히 가능한 것은 아니고, 둘 중 하나가 50%+1주를 확보하면 싸움은 끝난다. 또 중간에 양측이 '대타협'을 선언하거나, 한쪽이 '백기'를 들 수도 있다. 임시주총을 열어 의미있는 대결을 시도하려면 추가 매집으로 승리를 자신해야 하는데, 비용이 적잖이 든다. '실탄'이 부족한 쪽에서 먼저 주총 대결을 포기하리라고 본다면 임시주총은 1~2번 선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작년 말 주주명부를 이미 양측이 확보한 상황에서 개최되는 정기주총과 달리 임시주총은 전체 주주명부를 보지 못한 시점에서 45일 전의 상황을 짐작하여 소집해야 하는 것도 양측의 부담이다. 최근 주가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개인과 기관을 막론하고 손바뀜이 적잖이 일어난 탓에 승리를 자신하고 소집한 주총에서 의외의 결과를 맞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개별 이사후보에 찬반 물어.. 양측 인물 동수구성도 이론상 가능
시나리오를 한층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개별이사'에 대한 찬반을 묻는 방식이다. 지난 4일 한진칼이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정기주총에서 의안 제2호의 1로 조 회장 측 김석동 후보에 대한 찬반을 묻고, 2호의 5로 주주연합 측 서윤석 후보에 대한 찬반을 묻는 식으로 사내이사 5명과 사외이사 9명에 대한 의견을 물을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소액주주 등이 조 회장 측 후보와 주주연합 측 후보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해당 후보에 대한 평가까지 고려하게 된다.

조 회장 측이 신규이사 2명, 주주연합 측이 신규이사 6명을 통과시켜서 양측의 이사 수가 6대 6으로 비등(4명은 조 회장 측 기존 이사진)하게 되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어느 쪽도 과반을 점하지 못하면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또 주주들이 양쪽 이사 후보 전부를 통과시켜서 정기 주총 이후 이사회가 18명(잔여임기가 남은 4명+조 회장 측 제안 7명+주주연합 측 제안 7명)으로 구성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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