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계좌 확보 못하면 폐업"…가상화폐거래소 '특금법 비상'

입력 2020-03-15 15:22   수정 2020-03-15 15:24


국내 가상화폐거래소업계가 실명 계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법안 개정으로 인해 실명 계좌를 얻지 못하면 거래소를 운영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내 거래소 중 실명 계좌를 확보한 업체는 네 곳에 불과해 수많은 거래소가 폐쇄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명 계좌 있어야 사업자 신고”

13일 업계에 따르면 가상화폐업계는 최근 가결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의 시행령 개정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개정안은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라고 정의했다. 가상화폐가 ‘가상자산’으로서 법적 요건을 갖춘 것이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사업자(가상화폐거래소)가 준수해야 하는 사항도 규정했다. 자금세탁 방지 의무 등을 부과한 게 대표적이다.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실명 계좌와 관련한 사항이다. 개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가 금융정보분석원에 상호와 대표자 성명 등을 신고할 때 요건을 정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실명 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실명 계좌)으로 금융거래를 하지 않은 사업자에 대해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다. 미신고 업체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실명 계좌가 없는 가상화폐거래소는 신고 업체로 등록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국내 가상화폐거래소는 200여 곳이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실명 계좌를 보유한 곳은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네 곳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명 계좌 규정이 그대로 강행되면 대부분의 거래소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며 “자세한 실명 계좌 발급 요건에 다들 촉각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정확한 발급 요건은 향후 특금법 시행령에 구체화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가상화폐업계는 발급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실명 계좌 보유 거래소가 거의 없었던 것도 공신력 있는 계좌 발급 요건이 없어서라는 게 업계 얘기다. 2018년 1월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도입됐지만 실명 계좌를 발급받은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금융당국 ‘뒷짐’…“요건 구체화해야”

금융당국이 실명 계좌 발급 여부에 뒷짐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당국에서는 은행이 실명 계좌를 알아서 발급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은행은 당국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으로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발급 요건이 없는 상황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해주는 것은 은행으로서도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래소 자금세탁이나 내부 통제 문제 등에 개입되면 은행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부담”이라며 “현행 규정상 거래소 여러 곳에 실명 계좌를 내주는 것은 리스크를 키우는 일이어서 사실상 어렵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개정 특금법이 시행되는 내년 3월 전후로 상당수 거래소가 문을 닫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 추가로 실명 계좌를 발급해준다고 하더라도 소수 업체에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그동안 가상화폐 투자 바람을 타고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만큼 시장이 정리되는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업계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시행령의 모호한 부분들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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