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 대한항공…결국 1兆 유상증자 추진

입력 2020-04-20 17:38   수정 2020-04-21 01:41


대한항공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2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하기 위해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을 주관사로 선정했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 기준일 시점에 최고 30%가량의 할인율을 적용해 주주들에게 증자에 참여하도록 안내할 예정이다.

대한항공 최대주주는 한진칼(보통주 기준 29.96%)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하면 33.34%에 달한다. 나머지 지분은 국내외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이 나눠 갖고 있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할인율과 주가 전망 등에 따라 참여하지 않는 주주가 생길 수 있다. 이때 발생하는 실권주는 주관사단을 구성한 증권사들이 소화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이 급히 유상증자에 나서는 것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지난달 국제선 여객이 90% 이상 급감하는 등 세계 항공사가 ‘올스톱’ 상태에 처하면서 대한항공은 매달 수천억원의 자금 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건비와 항공기 리스료 등 고정경비 부담은 물론이고 매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의 부도를 막기 위해서 상당한 현금이 필요한 처지다.

정부는 조만간 항공업을 포함한 기간산업 지원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의 유상증자는 정부 지원책에 맞춰 마련하는 자구안의 성격도 있다는 분석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대한항공 최대 1兆 유상증자 추진
현금 말라가는 대한항공…정부 지원 앞서 자구책


대한항공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로 한 건 급박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항공업계 지원을 앞두고 대주주가 선제적으로 자구책 강구에 나선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부터 매출의 94%를 차지하는 국제 노선 대부분이 ‘개점휴업’ 상태다. 국내선과 항공기 정비 등을 제외하고 매출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항공기 리스 요금과 1만9000여 명에 달하는 임직원 급여도 매달 나가고 있어 조만간 ‘돈줄’이 마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매출은 12조6834억원으로 1년 전(13조116억원)보다 줄었고 영업이익도 6712억원에서 257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노재팬(일본 안 가기 운동)’의 여파로 황금노선으로 불리는 일본 노선의 실적도 타격을 받았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본 노선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돌리고, 유럽과 미주 노선을 강화했다. 하지만 올 2월 말부터 본격화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국과 동남아, 미주, 유럽 등 전 노선이 거의 폐쇄됐다.

증권사들은 지난 1분기 대한항공의 국제 여객 매출을 9000억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1년 전(1조80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영업이익도 적자로 전환해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분기 국제 여객 매출은 4200억원으로 1분기의 반 토막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영업손실도 3000억원대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의 자금 사정은 악화일로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한항공은 매달 항공기 리스 요금과 인건비 등으로 6000억원가량의 고정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8163억원으로, 매출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어 두 달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다. 연말까지 상환해야 할 차입금도 4조300억원에 이른다.

기업 신용도 하락과 자금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발행마저 막혀 대한항공이 선택할 수 있는 자금 조달 수단은 유상증자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유상증자를 통해 900%에 달하는 부채비율(지난해 3분기 기준)을 떨어뜨려 재무구조를 개선, 자금 조달 창구를 다양화한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정부에 긴급 유동성 지원을 요청한 상황에서 대주주가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도 대규모 증자에 나선 배경이다.

변수는 유상증자 규모가 최대 1조원에 달하는 데다 주가 희석으로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자구책 중 하나로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긴 하나 구체적인 방식이나 규모는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한항공이 1조원 유상증자를 주주 배정방식으로 진행할 경우 최대주주인 한진은 대한항공에 3000억원가량을 투입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진칼은 대한항공 최대주주(지분율 29.96%)에 올라 있다.

시장에선 3자연합(KCGI(강성부펀드)·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그룹이 대규모 투자금을 넣을지는 미지수란 분석도 있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한진그룹은 경영권 방어에도 힘겨운 상황”이라며 “조 회장의 사재 출연 역시 상속세 등으로 여의치 않다”고 분석했다. 3자연합 측은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를 공식 발표할 경우 따로 검토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실권주가 생기더라도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이상은/김재후/이선아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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