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시가총액 순위 변동이 말해주는 제조업의 미래

입력 2020-05-12 18:14   수정 2020-05-13 00:30

21세기 제조강국의 향방

각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순위의 변동이 커지고 있다. 한국 증시에선 바이오와 자동차용 2차전지 기업이 성장한다. 독일과 일본에서도 새 기업들이 대장주로 떠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제조업의 향방에 정부와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시장에선 미래를 정해놓은 듯 새로운 업종과 기업에 환호한다. 투자가들은 미국의 정보기술(IT) 공룡들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자국의 핵심역량과 이들 공룡기업의 결합을 지켜본다. 정부의 전략과는 다른 길이다. 정부는 오히려 사회 시스템의 경쟁력을 높이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코로나19를 해결하는 것처럼 말이다.

독일 증시(DAX)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은 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SAP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업 디지털화가 진척되면서 최근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부쩍 관심을 끄는 기업은 SAP가 아니라 시총 2위인 산업용 가스 업체 린데(Linde)다. 린데는 4년 전만 해도 시총 10위권에 들지 못했던 기업이다. 2017년 미국의 동종기업 프렉스에어와 합병했고 최근 실적도 아주 좋다. 올해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난 5억7300만달러의 순익을 냈다.

이 기업이 주목받는 건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린데는 수소를 액체로 전환하는 액화수소기술과 수소 충전기술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유럽 대륙에선 이미 수소열차와 수소트럭 등이 다니고 있다. 스티브 앙겔 최고경영자(CEO)는 “수소차에 (독일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 확신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독일 투자가들은 디지털 혁명과 맞물린 수소경제시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韓 시총 10위 3년새 5개 바뀌어

그토록 변하지 않던 일본 주식시장도 꿈틀거리고 있다. NTT도코모 등 통신사가 여전히 증시를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가들은 시총 4위 센서 업체 키엔스에 관심을 두고 있다. 30년 전 시총 1356억엔(약 1조4000억원)이던 기업이 현재는 시총 9조7000억엔(약 100조원)을 웃돈다. 70배가 넘는 대기록이다. 2위인 NTT도코모와 3위 소프트뱅크그룹을 언제라도 넘볼 태세다. 공장자동화(FA)와 모든 산업의 디지털화에 이 기업 센서가 독보적이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 앞으로의 수요는 무궁무진하다. 10위권에는 들지 못하지만 초소형 모터 업체 니혼덴산도 30년 전 대비 시총이 80배가 넘는 기록적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투자가들은 데이터나 소프트웨어 업체보다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주시하고 있다.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건 한국 증시다. 3년 전 10대 시총 기업 중 지금도 10위권(5월 12일 기준)에 속한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5개뿐이다. 바이오 기업의 약진이 거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3위를 달리고 있고 셀트리온이 5위, LG생활건강이 7위다. 2차전지 업체인 LG화학이 6위, 삼성SDI가 9위다. 10위권에서 8개 업체가 반도체와 바이오 2차전지 업체다. 이들 품목은 부가가치가 높고 파급효과가 큰 기술기반 제조업이다. 한국의 특기인 대규모 생산투자와 생산관리 기술, 클린 기술 등을 활용한 기업들이다. 위탁생산도 새로운 카테고리다. 이들의 혁신 능력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위탁생산도 새 형태로 각광

반면 세계 시총의 상위 순위는 여전히 미국 IT 공룡들이 차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조4160달러(약 1737조1488억원)로 1위고,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알리바바 페이스북이 그 뒤를 잇는다. 모두 거대 IT 기업 군단이다. 이들 기업이 4년 전부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무형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빅데이터와 AI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업들이다. 코로나 이후 반도체 기업의 시총은 늘고 석유 관련 기업은 줄고 있는 형편이다.

독일과 일본 한국은 제조업 수출로 경제 성장을 일궈온 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 강국들이 21세기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게 시총에서 확인된다. 금융업이 시총 순위에서 많이 빠져 있는 게 공통적으로 엿보인다. 일본과 독일 모두 금융산업이 세계적이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장이 주목하는 건 서비스업도 건설업도 아닌, 21세기를 이끌어갈 제조업이다.

투자가들은 미국의 IT 기업처럼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무기로 한 기업을 찾지 않는다. 이들은 본국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거다. 대신 이들은 디지털과 친환경 시대에 맞춰 각국의 핵심역량을 살린 기업에 주목한다. 레드오션의 IT 생태계보다 오히려 고부가가치를 노리는 산업에 특화하는 전략이 제조 국가에는 낫다는 것이다. 린데가 그렇고 키엔스가 그렇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도 그렇다.

또한 투자가들이 찾는 기업의 특성은 새로운 분업체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동종업체와의 제휴·협력은 물론 다른 업종의 기업과도 적극 교류한다. 특히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에서 2차전지와 수소충전 등은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재료다. 이들은 전통적인 수직계열화에서 벗어나 IT 분야에서 전개되던 수평분업의 산업구조를 선호한다. 즉 어떤 기업에 매여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기업과 교류하며 협력한다. 이들 기업은 성능의 비교우위만이 아니라 양산 체제 구축을 통한 가격 경쟁력의 확보를 우선으로 판단한다.

바이오산업도 마찬가지다. 신약 개발과 제품의 독자 생산구조에서 벗어나 위탁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대량생산 구조를 짠다. 이 같은 구조에선 생산관리가 더욱 필요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주도하지 않고 민간이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독일 정부와 일본 정부도 제조업 강국을 위한 국가전략을 짜왔다. 한국 정부도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을 끊임없이 외쳐댔다. 하지만 정작 시장에선 대외여건 변화와 기업들의 잠재력, 성장성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지난해 정부가 제조업 르네상스를 국가 전략으로 삼으면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차전지는 2030년이 돼도 부가가치 비중이 1.6%밖에 안 된다는 이유에서 신산업 순위 20위권 밖에 밀려나 있다. 바이오헬스 부가가치 비중도 3.9%로 9위다. 스마트화 융합화에 의한 제조업 부가가치 제고와 혁신의 가속화를 일깨우지만 시장과는 뚜렷한 차이가 난다.

기술의 사회 수용성 중요해져

시장이 만능일 수는 없다. 시장에 얼마나 거품이 끼어 있는지 관찰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다. 무엇보다 이런 산업을 일궈가는 데 자원과 기술을 활용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이 앞서면 안 되고 사회적 수용성과 같은 시스템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제조강국들은 산업 경쟁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경쟁도 동시에 펼치고 있다. 코로나 방역과 같은 시스템 경쟁이다. 지금 그런 패러다임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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