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춘향' 들고온 김명곤…"지금 청춘들의 모습 담았죠"

입력 2020-05-17 18:21   수정 2020-05-18 00:30

“나를 죽여 내치거든 삯꾼(일꾼)인 채허고 달려들어 나를 업고 물러나와 우리 둘이 인연 맺던 부용당에 날 뉘고….”

지난 1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창극 ‘춘향’(사진)에서 옥에 갇힌 춘향이 거지꼴로 찾아온 몽룡에게 유언을 남기는 장면이다. 이날 공연 전 기자와 만난 연출가 김명곤 씨는 이 대목을 설명하던 중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인터뷰는 잠시 중단됐다. “젊은 시절이 생각나 눈물까지 보였네요. 당시 아내가 집안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디고 가난한 연극배우였던 저와 결혼한 게 떠올라 그랬습니다. 이번 공연에 등장하는 춘향과 몽룡은 제 페르소나(분신) 같아요.”

배우이자 연출가인 김씨는 국립창극단이 국립극장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춘향’의 연출을 맡았다. 국립극장장(2000~2005년)과 문화관광부 장관(2006~2007년)을 지낸 그는 배우로 유명하지만 소리꾼이기도 하다. 10년간 명창 박초월(1917~1983)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춘향’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1998년 국립창극단의 6시간짜리 완판창극 ‘춘향’의 대본을 맡았고, 2000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시나리오도 썼다. 이번 공연에서도 연출뿐 아니라 두 시간 분량의 극본도 직접 썼다.

“원작 춘향전은 청춘들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요즘 젊은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캐릭터와 이야기를 수술했어요. 춘향은 지고지순한 순종형 여인이 아니라 사랑을 쟁취하는 진취적 여성으로, 몽룡은 현대 사회에서 결혼 상대의 학벌, 직장, 재산 등을 따지는 부모를 이겨내는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춘향의 달라진 모습은 첫 장면부터 나온다. 엄마 몰래 광한루 축제에 놀러가려고 들뜬 춘향은 당돌하고 발랄하다. 처음 만난 날 몽룡은 방자를 시켜 춘향을 오라 하지만, 춘향은 “네가 뭔데 나를 오라 가라 하냐”며 단박에 거절한다. ‘사랑가’를 부르는 장면도 이전 ‘춘향’과는 딴판이다. 월매의 강요로 작성된 혼인증서를 “이런 증서 따윈 믿지 않겠다”며 북북 찢어버리고는 몽룡의 허리끈을 잡고 방으로 이끈다. “원작에서는 남자(몽룡)의 시각으로 사랑을 풀어냈죠. 이걸 뒤집고 싶었어요. 가사와 정반대로 춤을 추며 춘향의 적극적인 캐릭터를 부각시켰습니다. 몽룡이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하면 춘향은 도망가죠. 되려 몽룡이 엎드리면 그 위에 춘향이 올라탑니다.”

이별가를 부르는 장에선 몽룡의 고뇌가 드러난다. 그는 “몽룡을 가문의 압박을 이겨내고 고뇌하며 성장하는 인물로 그렸다”며 “몽룡이 ‘차라리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면’이라고 한탄하는 대사를 새로 만들어 넣었다”고 했다.

바뀐 건 등장인물의 성격만이 아니다. 극의 전개 속도가 영화처럼 빨라졌다. 몽룡이 춘향과 만나 이별하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단오(음력 5월)부터 그해 가을까지로 줄였다. “원작에서 몽룡은 ‘나쁜 남자’죠. 몇 년 동안 과거시험을 준비하면서 춘향에게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잖아요. 남자친구의 군생활 2년도 기다리기 힘든 시대에 쉽게 공감하기 힘들죠. 현대적인 해석을 위해 시간을 압축했습니다.”

전개가 빨라졌지만 창극의 기본이자 본질인 ‘소리’는 충실히 살렸다. 대사에 해당하는 아니리를 줄이되 오페라의 아리아에 해당하는 눈대목은 그대로다. “완창하면 여섯 시간 이상 걸리는 대작을 두 시간가량으로 줄여야 했기에 눈대목을 강조하기로 했죠. 다만 사랑가와 이별가, 옥중가, 어사출두가 등 뛰어난 눈대목을 젊은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고어(古語)를 지금의 우리말로 풀어냈습니다. 소리꾼의 창을 부각시키려 반주 음량을 조절하는 데도 특별히 신경 썼습니다.”

오는 24일까지 무대에 오르는 ‘춘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립 예술단체가 처음 선보이는 공연이다. ‘생활 방역’ 지침에 따라 관람 전 관객 문진표 작성,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 지그재그식 한 자리 띄어 앉기 등으로 진행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연습실에서도 10명 이상 모일 수 없었습니다. 장면별로 연습해 3개월 가까이 짜깁기하듯 만들었죠. 다행히 공연이 취소되지 않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춘향과 몽룡의 순수한 사랑이 코로나19로 힘든 관객에게 위로와 기쁨, 웃음과 눈물, 그리고 에너지를 함께 전달하면 좋겠습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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