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현의 논점과 관점] 코로나가 '축복'이 되려면

입력 2020-05-19 17:56   수정 2020-05-20 00:16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할 것”이라는 관측은 국내에서만 나오는 자화자찬이 아니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태국은 사망률을 5% 밑으로 잘 관리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해외 석학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 같은 국가에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허둥대는 와중에 일찌감치 전열을 정비해 치고 나갈 힘을 비축했다는 게 가장 크다. ‘코로나 쇼크’가 역설적으로 잘못된 제도나 관행을 수정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을 꼽는 학자도 있다. 에스와 프라사드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위기국면에선 개혁에 대한 저항이 약해져 제도 개선에 더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우왕좌왕하는 규제개혁

하지만 코로나19를 일찍 제어했더라도 유리한 여건을 살리지 못하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허투루 보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어 답답함을 자아낸다.

대통령이 “한국을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큰 그림’을 제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후 당·청 간 논의 등을 보면 ‘진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많다. 20년째 막혀 있는 원격의료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청와대가 나서자 더불어민주당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찬물을 끼얹는 판이다. 민주당 내부의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일각에서는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금산분리 원칙을 깨고 대기업의 벤처투자를 허용하는 안을 들고나온 반면 당 차원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 기업을 더 옥죄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21대 국회에 추진하기로 했다. 진심이 무엇이건 간에 국가의 비전은 모호해지고 혼란은 커졌다.

시행착오 봐줄 여유 없어

이런 혼선은 코로나19의 대규모 발병 와중에 시작된 인도의 일사불란한 개혁 움직임과 대조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12일 대국민 연설에서 “전 세계 공급사슬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대담한 개혁으로 전진해야 한다”며 주춤했던 ‘4L 개혁’ 재추진을 시사했다. 토지(Land)·노동(Labour)·금융(Liquidity)·법(Laws) 개혁을 뜻하는 이 개혁은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모디 총리가 집권 초기부터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이다. 농민·노조 등 기득권 반발에 부딪혀 1년여간 멈췄던 것을 되살리는 만큼 성패가 판가름 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여당인 인도국민당이 다수를 차지한 주(州)에서 앞으로 3년간 엄격한 노동규제를 유예하기로 하는 등 긍정적 스타트를 끊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평상시에도 그렇지만 지금은 이익단체 눈치 보기나 정책 시행착오로 인한 시간 낭비를 봐줄 수 있는 때가 아니다. 방역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서도 국제 질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주요국의 힘겨루기는 격화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리쇼어링(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는 정책) 및 외국 기업 유치 경쟁에 휘말려 주력 기업과 일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 국민들이 정권에 요구하는 것은 ‘말의 성찬’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구체적인 성과일 것이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 좌충우돌하다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중진국 나락으로 추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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