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소통·화합 꿈꾼 백남준의 선견지명을 보다

입력 2020-05-27 17:18   수정 2020-05-28 03:11


1963년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백남준(1932~2006)은 13대의 실험 TV 수상기를 선보였다. 내부회로를 각기 다르게 변형한 수상기였다. 전시 관람 시간은 오후 7시30분부터 단 두 시간. 당시 서독의 TV 방송 시간대였다. 백남준은 시청자나 관람객이 이들 수상기를 이용해 방송 프로그램을 다양한 전자기적 신호로 변환할 수 있게 했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였다. 예술과 기술을 융합해 미래를 예측했고, 전 지구적 소통을 꿈꿨다. 이를 위해 주목한 것이 TV 방송의 힘이었다. 그는 TV를 예술의 매체로 활용하고, TV를 매개로 시청자가 참여하는 예술적 실험을 선보였다.

경기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백남준 티브이 웨이브(TV Wave)’는 비디오아트와 텔레커뮤니케이션이 결합된 ‘백남준의 방송’을 키워드로 1960~1980년대에 그가 선보인 방송과 위성 작업 등 TV 탐구와 실험을 조명하는 자리다. 첫 개인전에 출품한 실험TV부터 직접 기술을 배우고 공부해 만든 비디오 신시사이저,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협업 작품, 1980년대의 대규모 위성 프로젝트까지 망라해 당대의 기술과 예술을 앞질러갔던 그의 선견지명을 엿보게 한다.

실험TV들 중 ‘참여TV’는 마이크를 통해 관객이 내는 소리를 전자신호로 변환해 모니터에서 영상이 나타나게 한 것이다. 소리의 주파수에 따라 무한대 모양부터 왕관 모양까지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 내는 ‘TV왕관’과 ‘쿠바TV’ 등 백남준의 다양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백남준은 1964년 미국 이주와 함께 비디오 작업을 본격화했다. 미국 최초의 비디오 아트 방송 프로그램이었던 1969년의 ‘매체는 매체다’를 시작으로 TV 방송을 통해 수많은 시청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예술적 실험을 전개했다. 크기가 다른 세 대의 모니터를 아크릴 상자 안에 쌓고 그 위에 스크롤과 테일피스(악기 끝에 줄을 고정시키는 장치), 현을 달아 첼로 모양이 되도록 한 비디오 조각 ‘TV 첼로’,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을 위해 만든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등의 작업을 볼 수 있다.

백남준은 예술가이자 기술자였다. 예술적 구현을 위해 스스로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장치를 창안했다. 일본 공학자 아베 슈야와 함께 1969~1970년에 만든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가 대표적이다. 형태와 색채의 분리, 결합과 반복, 해상도 조정, 분할과 확대, 압축과 피드백 등을 통해 누구든지 1001가지 방법으로 영상을 제작·편집할 수 있는 장치였다. ‘피아노 건반처럼 영상을 연주한다’는 뜻의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거의 모든 그의 비디오 작업에 사용됐다.

비디오 신시사이저로 만든 첫 작품 ‘비디오 코뮨’을 비롯해 데이비드 보위·험프리 보가트·로렌 바콜 등 대중 예술인과 협업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해 이미지와 실재의 순환관계를 보여주는 ‘TV 부처’ ‘달에 사는 토끼’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 등도 재미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킨 대규모 위성프로젝트 ‘세계와 손잡고’ 등을 기획한 백남준. 예술과 기술을 융합해 시대를 앞서갔던 그는 TV는 점과 공간을 잇는 소통이며, 비디오의 최종 목표는 점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고 소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컴퓨터와 인터넷·모바일, SNS 등으로 공간과 공간의 연결과 소통이 실현된 지금,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선견지명을 보여줬을지 궁금해진다. 전시는 내년 3월 7일까지. 관람료는 없다.

용인=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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