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도입해야 빈부격차 완화" vs "오히려 빈곤율만 높일 것"

입력 2020-06-24 17:09   수정 2020-06-25 08:45


“노동·투자가 없는데 어떻게 소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 자체가 진보진영의 사기입니다.”(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기본소득은 사회의 부를 공정하게 나누자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것을 비판하지만 부자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요.”(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기본소득, 어떻게 해야 하나’ 웹세미나가 24일 열렸다.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전문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웹세미나는 주제의 민감성만큼 격렬한 설전이 펼쳐졌다. 안 위원은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과 반대 견해에 따라 한치 양보 없는 토론이었다”며 “원격으로 진행되는 웹세미나에서도 치열한 의견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토론회에는 기본소득 찬성 측에 백승호 교수와 함께 이원재 랩2050 대표, 반대 측에서는 이병태 교수와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기본소득 필요한가

양측은 먼저 4차 산업혁명 등 경제구조 변화가 사회 및 일자리 전반에 불러올 파급 효과를 두고 부딪쳤다. 찬성 측은 근본적인 변화에 따라 기본소득 등 파격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반대 측은 파급력이 과장됐다고 맞섰다.

이 대표는 “플랫폼 경제가 커지며 새로 생기는 일자리 대부분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반면 소수 일자리엔 높은 소득이 주어지는 일자리의 특권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고정된 정규직 일자리를 해체하는 트렌드는 분명한 만큼 국민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도 “2015년까지 10년간 반도체 등 전자산업에서 연평균 실질생산 증가액이 1조원 늘어나는 동안 고용은 3500명 감소했다”며 “산업 지능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가 이미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2016년까지 10년간 미국에서 프리랜서 등 플랫폼 근로자는 1%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보고서가 있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윤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효과는 전망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준비를 해야지 미리 변화를 전제로 정책을 설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복지제도로서 의미는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반대 측에서는 기본소득이 빈곤 해결 등 원래 복지정책의 목표에 역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찬성 측은 기본소득 없는 현행 제도만으로는 빈부격차가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윤 연구위원은 “사회복지제도의 사각지대가 넓은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보다 빈틈을 채워 취약계층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예산이 세 배 늘었지만 지급 대상이 지나치게 많아 노인빈곤율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기초연금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로 기존 복지제도 감축이 불가피해 빈곤층의 삶이 악화될 수도 있다”며 “저소득 근로자의 수입을 보조하는 근로장려세제를 강화해 일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맞서 이 대표는 “지금의 복지제도 자체가 산업화가 절정이던 20세기 중엽 유럽에서 설계된 것”이라며 “유럽은 100년, 한국은 20년 해당 복지제도를 운영했지만 아직도 사각지대가 있다면 현행 제도로는 그것을 없애기 불가능해 새로운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지급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하되 세금 등을 통해 소득에 따라 환수하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면서 빈부격차도 낮출 수 있다”며 “불합리한 기존 복지제도가 더 팽창하기 전에 서둘러 도입해야 프랑스 등 유럽의 전철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 파급력은 어떨까

재원과 관련해서도 논쟁이 이어졌다. 백 교수는 “새로운 세원 발굴과 증세, 국채 발행 등 다양한 대안이 있다”며 “소득세 감면 폐지에 세율 30% 정도의 증세가 이뤄지면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정도의 기본소득은 당장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윤 연구위원은 “지금 있는 국민연금도 2088년이면 누적 적자가 1경70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재정 추계가 있다”며 “당장 돈을 주겠다며 효과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위한 비용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경제 전반에 대한 기본소득의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이 대표는 “기본소득을 통해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들면 저축 대신 소비를 하려는 사람이 늘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실제로 자체 연구 결과 시행 첫해를 제외하고는 소비성향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미국경제연구소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국민에게 연 1만1000달러를 지급했을 때 첫해만 소비가 1.2% 늘어나고, 이후에는 세금 부담으로 소비능력이 9%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음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세대 간 폰지사기라는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웹세미나는 한경닷컴 홈페이지와 유튜브 한국경제신문 채널을 통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노경목/강진규/서민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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