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화장품업계의 애플을 기대하며

입력 2020-07-02 17:58   수정 2020-07-03 00:02

금융회사와 바이오벤처기업에서 2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 2008년 화장품회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화장품업계에 먼저 자리잡은 친구가 “화장품을 팔려거든 프랑스나 이탈리아 수입 화장품을 취급하는 것이 훨씬 낫다”며 자신이 한국 총판권을 가진 브랜드를 하나 줄 테니 영업을 뛰어보라고 했다.

나는 친구의 권유를 거절했다. 어렵더라도 자체브랜드로 제품을 제조해 해외에 진출하는 꿈을 꿨기 때문이다. 당시 글로벌 브랜드가 이미 국내 화장품코너를 점령하다시피 했고, 유수의 국내 브랜드 역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신생업체는 들어갈 틈조차 없는 레드오션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화장품업계 경력도 없고, 자금조차 여유가 없으니 친구는 나에게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것이라고 고언(苦言)했다.

친구 말대로 나의 사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자체 공장이 없어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외주 생산업체에 제조를 맡겼다. 용기, 튜브, 종이상자 등 부자재도 대부분 영세한 업체를 통해 생산했다. 지금은 화장품 관련 제조기술이 상향 평준화됐으나, 12년 전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화장품 내용물이 서로 분리되거나, 오염·변질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품질 테스트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시장에 출시한 이후에 소비자나 중간대리점에서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서 출시한 비비크림에 대한 평가가 좋아 수출을 했다. 문제는 포장에서 발생했다. 튜브 용기와 포장 상자의 금박 인쇄 상태가 해외 바이어의 기준에 맞지 않아 불량률이 30%에 이르렀다. 바이어와 같이 부자재업체에서 공정을 하나하나 다시 점검하면서 불량률을 0.5% 미만으로 줄였는데, 바이어는 불량률을 ‘제로(0)’로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이후 모든 공정과 부자재를 직접 검수해야 했다. 이때의 고생은 전체적인 품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국 화장품업계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국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제조를 맡길 정도로 품질 경쟁력을 갖췄다. 용기 및 원료회사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국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온라인 마케팅 능력을 갖춘 다양한 젊은 브랜드가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공장은 없더라도 아이디어와 마케팅 기획력이 있으면 적은 자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산업적 토대가 마련됐다. 자체 공장 없이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회사를 키우는 아디다스, 애플 같은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우리 주위에도 존재한다. 한국의 젊은 화장품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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