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정부 기업 길들이기 압박에…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 넘버 원투 줄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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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7-08 11:02   수정 2020-07-08 14:37

[마켓인사이트]정부 기업 길들이기 압박에…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 넘버 원투 줄퇴사


≪이 기사는 07월07일(06:3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의 기업에 대한 경영권 참여 등 주주활동 전반을 관장하는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 내 1~2인자가 모두 퇴사했다. 정부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이 적극적 주주로서 기업에 목소리를 낼 것은 요구하면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의 원칙)을 명분으로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된 것에 대해 부담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 수탁자室 넘버1·2 모두 퇴사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8년 말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을 이끌어온 최성제 실장과 강신일 책임투자팀장이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수탁자책임실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른 주주활동과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지표를 투자 결정에 이용하는 책임투자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국민연금은 2018년 12월 운용전략실 산하에 있던 책임투자팀을 수탁자책임실로 승격했다. 최성제 당시 책임투자팀장이 실장을 맡아 최근까지 조직을 이끌어왔다. 최 실장과 강 팀장은 2018년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당시 갑질 논란이 일었던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참여, 작년 말 적극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 마련 등 굵직한 사안들을 맡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스튜어드십코드의 핵심 실무 부서인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의 '원투펀치'가 줄퇴사하면서 정부의 당초 계획도 어그러지는 모양새다. 국민연금은 이동섭 주주권행사팀장을 수탁자책임실장으로 승격시켰지만 2018년 실 승격 당시부터 크고 작은 일을 책임져온 담당자들의 빈자리를 채우긴 역부족이라는 것이 국민연금 내외부의 평가다.

실제 국민연금과 스튜어드십코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올해 상반기 중 국민연금이 기업에 정관 변경을 요구하더라도 경영 참여로 인정 받지 않기 위해 현행 자본시장법 상 요구되는 조건인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사전에 공개 된 원칙'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사진 추천과 같은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 위해 올해 중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던 사외이사 풀(POOL) 또한 아직 착수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호한 기준으로 기업 압박...과도한 부담

업계선 스튜어드십코드를 명분으로 국민연금을 기업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과 정부 내부의 압박이 심해진 것을 이들의 퇴사 배경으로 꼽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국민연금이 부실한 배당정책, 배임·횡령 등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했을 때를 비롯해 '예상치 못한 우려 사안'이 발생했을 때 투자기업에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강행처리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경영계는 "모호한 잣대를 대거 담은 깜깜이 지침을 통해 정부와 국민연금이 원하는 대로 민간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올초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기존 '경영참여'와 '단순투자' 사이에 '일반투자'라는 주식 보유 목적 항목을 새롭게 만들고 공시 의무를 완화시키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의 폭이 급격히 넓어지면서 수탁자책임실이 느끼는 부담도 커졌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내 상장사의 수는 300곳이 넘기 때문이다. 올해는 경영권을 두고 '남매의 난'이 벌어진 한진칼을 비롯해 회장 교체기를 맞았던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금융지주사의 주총 안건을 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압박이 잇따랐다.

◆"국민연금의 정치적 활용 압박의 결과물"

이 과정에서 수탁자책임실이 과도한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는 것이 업계 내의 지배적인 견해다. 기금운용본부 차원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의 경우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재하는 기금운용위원회 등 상위 조직에 최종 판단을 맡기지만, 비공개대화 및 비공개중점관리기업 선정 등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물밑 작업을 전담하는만큼 정치권과 정부에서 가해지는 압박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내부에선 모호한 기준으로 자칫 기업 경영 간섭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에 총대를 매야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이번 정부에선 괜찮을지 몰라도 정부가 바뀌면 책임 추궁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컸고, 두 사람의 퇴사 역시 이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국민연금의 기업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도 이들의 퇴사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임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사임한 이후 반년 가까이 비어있던 이사장이 새롭게 임명되고, 임기가 10월로 다가온 안효준 기금운용본부장(CIO)의 후임으로 2년 전에도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거론되는 것도 국민연금 내부의 동요를 불러일으켰다는 후문이다.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를 이끄는 류 대표는 업계 내 대표적인 스튜어드십코드 지지자로 꼽힌다.

국내 한 기관 CIO는 "이번 수탁자책임실 조직의 와해는 공적 연기금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압박의 결과물"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공적 자금을 지원 받는 기업이 많아지며 정부의 영향력이 확대된 만큼 그 공적 연기금에 가해지는 압박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두 사람의 퇴사는 개인 일신 상의 이유로 이뤄졌다"며 "수탁자책임 업무는 차질 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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