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골목 단상

입력 2020-07-15 18:05   수정 2020-07-16 00:04

골목은 사전적 의미로는 건물 사이나 뒷면에 형성된 길이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피맛골이 골목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피맛골이 생겨난 유래를 떠올려보면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게 섰거라” 외쳐대는 양반들, 말이니 마차니 인력거를 피해 연신 굽신거리기 바빴던 서민들이 그 꼴 보기 싫어 길을 하나 낸 것이니 말이다. 갈 길 바쁜 와중에 인사치레니 체면치레니, 목구멍이 포도청으로 살아가던 서민들에겐 다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었을 테다. 그래서, 그렇게 서민들은 대로가 아니라 뒷골목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 제호 때문에 익숙한 것 같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골목’은 매우 상대적이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 아파트가 품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골목은 체험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이다. 소위 계획도시라는 곳이 다 그렇다. 블록형으로 생긴 큰 도로는 새로 생긴 주소에 걸맞지만 보행자가 걷기엔 벅차다. 블록형 도로 뒤쪽 골목은 골목이라기엔 너무 복잡하거나 넓다.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은 경우도 흔하다. 지도상으론 가깝지만 걷기엔 너무 먼 경우가 허다하다. 8차로가 넘는 도로의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보면 볕은 너무 뜨겁고, 바람은 너무 세다.

우리 대중 언어 속에서 골목은 낯익어서 더 특별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현저동 골목길이 그렇고, 김현식이 불렀던 노래 ‘골목길’이 그렇다. 골목길 어딘가에는 골목 슈퍼가 있고, 짙게 그림자를 드리운 큰 나무도 있다. 수줍은 연인들이 타인의 눈을 피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내내 시간을 보내던 길도 골목 끝에 있다.

최근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끄는 새로운 장소들은 우연찮게 다 골목길이다. 익선동 삼청동 한남동 연남동의 가게들은 지나치는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는 좁은 골목길에 잇닿아 있다. 윤대녕 작가는 그의 소설에서 좋든 싫든 마주칠 수밖에 없는 좁은 골목으로 인연을 비유한 바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이 세계와 저 세계는 눈의 풍경으로 나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곳을 무엇으로 인지하고 감지할까? 아마도 높은 빌딩을 보면서 여긴 잠실이구나, 여긴 여의도구나 하며 올려다보진 않을까?

골목길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접어드는 변화는 작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수평적 세계이기에 가능한 발견이다. 점점 골목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아주 멀고 높은 곳을 나침반 삼아 더운 땡볕 아래 넓고 긴 대로를 걷는다. 대로 위엔 인연이 드물다. 골목에 이야기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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