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절반 정도라도 관심을"…깡통전세 속출하는 지방도시

입력 2020-07-20 10:01   수정 2020-07-20 15:36


서울 및 수도권은 매물부족과 전셋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반면, 지방은 역전세가 우려될 정도로 침체된 상태다. 지방에서 세종시를 비롯해 5대 지방 광역시는 수도권과 비슷한 분위기다.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나머지 지방도시에서는 낡은 아파트의 매매가가 떨어지면서 전셋값이 더 높은 상황까지 나오고 있다. 지방이라도 새 아파트를 선호하는데다 지방의 낡은 아파트들은 재건축을 할 가능성이 없어서다. 임대차3법을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지방 중소도시의 전셋값은 오르지 않고 있다. 동시에 매매가가 빠지면서 전셋값이 매매가와 차이(갭)가 작거나 역전되는 현상도 속출하고 있다.

새 아파트라고 해서 모두 인기가 있는 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추진된 혁신도시들이 이런 경우다. 일부 도심과 가깝게 지어졌던 혁신도시를 제외하고 지방 소도시에 조성된 혁신도시들에서도 전세와 매매가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갭투자'가 쉬운 조건이다보니 집주인들은 서울 사람인 경우들도 많다. 세입자들은 '갭투자 활성화 → 집값 상승 → 전셋값 상승 → 세입자가 갭투자 매물 매입' 등으로 이어지는 거품을 우려하고 있다. <한경닷컴>은 지방에서 역전세난이 우려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난 현황을 집중 취재했다.
텅빈 혁신도시, 지역주민들 외면속 침체
자녀들을 모두 출가 시키고 아내와 함께 김천혁신도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모씨는 '며느리 얘길 들을 걸 그랬나' 가끔 후회가 된다. 5년 전 김천혁신도시가 조성 초기인 무렵, 김 씨는 동네 친구인 공인중개사의 소개로 시골집을 처분하고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했다. 당시 며느리는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를 했고, 김 씨는 '시골구석에서 평생 살았지만, 나도 한 번 깨끗한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전세라고 일단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며느리의 설득에도 김 씨는 결국 아파트를 매입했다.

김 씨도 생각은 있었다. 아파트니 이웃들도 많을테고 주변 상가에 식당도 많이 생길테니 외식하기도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KTX 김천구미역 바로 앞이어서 자녀들이 손주들과 자주 놀러올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김 씨의 생각과는 주변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상태다. 상가는 공실로 텅빈 상태이고, 이웃집 사람들은 자주 바뀌었다. 집을 내다 팔려고 하지만, 집값이 많이 오르지도 않아서 그마저도 망설여진다. 팔더라도 아들과 며느리가 전셋값을 도와주기도 벅차다보니 미안할 뿐이다.


김 씨가 집으로 곤란함을 겪고 있는 김천시 일대는 침체된 혁신도시와 경북 일대 부동산 경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김천과 구미 일대는 일자리 감소와 지역사회의 침체로 집값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집값이 치솟는 대구광역시와는 다른 분위기다. 매매가 이뤄지는 건 외지에서 들어온 갭투자 정도이고, 집주인은 갭을 줄이기 위해 전셋값을 올리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김천시 응명동 김천코아루 전용 84㎡의 경우, 지난달 전셋값 1억3000만원이었고 매매가는 1억4800만원이었다. 차이가 1800만원 밖에 나지 않았다. 구미의 대장 아파트인 옥계동 옥계현진에버빌엠파이어는 전용 103㎡의 전셋값이 2억5000만~2억8500만원이다. 이달들어 체결된 매매가는 3억2700만원이다. 차이가 5000만원 미만이다.

옥계동의 K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지방 부동산에 관심이나 있냐"며 "지역 일자리가 나오고 경기과 회복되면서 부동산 값이 올라야하는데, 갭투자 정도로면 매매가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또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지역 부자들은 서울이나 수도권, 광역시로 떠난지 오래다"라며 "지역 실수요자들은 갭투자 받쳐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씨가 살고 있는 김천혁신도시를 비롯해 경남 진주, 충북 진천, 강원 원주 등 중소도시에 조성된 혁신도시들 또한 비슷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 종사자들은 출퇴근을 하면서 전월세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을 매입하더라도 시내에 안정적인 인프라를 찾아가고 있다. 지역민들만이 분양가와 비슷한 혁신도시 아파트값을 지탱하고 있다.
중소도시 낡은 아파트,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주는 '마이너스갭' 속출

2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누적 상승률(7월13일 기준)에서 매매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는 지역은 광주, 경북, 제주 등이다. 여기에서 전세가까지 하락하는 지역은 경북과 제주다.

상승하더라도 미약한 수준이다. 전북은 올들어 아파트값이 0.46% 상승한 동안 전셋값은 0.09% 올랐고, 전남은 매매가 상승률과 전셋값 상승률이 0.55%와 1.08%를 각각 기록했다. 경북은 -0.96%, -0.23%를, 경남은 0.73%, 1.22%를 제주는 -1.35%, -0.63%를 각각 나타냈다. 광역시도 통계에서 매매가 보다 전세가가 더 상승하다보니 개별 아파트별로는 역전현상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지방의 낡은 아파트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경남 창원 성산구 대방동 개나리1차(전용 49㎡)는 지난달 17일 1억200만원에 매수한 매수자가 나타나자마다 전세로 1억1500만원에 계약이 나왔다. 갭이 오히려 마이너스(-) 1300만원인 셈이다. 매매 계약을 하고 세입자에게 돈을 받는 꼴이 됐다. 전세 호가는 1억 중반대인데 비해 매매가는 9000만원대에도 호가가 나와 있다. 남양동 성원1차(전용 84㎡) 역시 지난 5월에 2억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반면 전세계약은 2억1000만원에 이뤄져 갭이 -1000만원이 됐다. 매매는 2억원선이지만, 전세는 2억2000만원까지 호가를 부르는 등 역전세가 자리잡고 있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의 대표적인 지역인 김해시 역시 이러한 경우들이 속출하고 있다. 김해시 어방동 대우유토피아 전용 59㎡의 경우 지난 5월 매매가가 7800만원이었다. 이 집주인은 최근에 8700만원에 전세계약을 했다. 2개월 새 세입자에게 900만원을 돌려받는 셈이 됐다. 그나마 최근 매매가는 8000만~8500만원 수준으로 올라와 마이너스를 면했다.

이처럼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마이너스갭이 속출하면서 깡통주택·깡통전세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다. 깡통주택은 가격이 큰 폭으로 내려 집을 팔아도 전세 보증금과 대출액을 갚지 못하는 주택이다. 깡통전세는 전세 재계약이나 경매 때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해 집주인이 돈을 내줘야 하는 집을 말한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깡통주택·깡통전세는 경남 창원, 김해, 전남 순천 등에서 시작돼 충청, 강원권까지 번지는 추세다. 강원 원주의 단구동 청솔7차아파트 59㎡ 현재 시세가 9억500만~1억 500만원. 2년 전 시세는 1억1000만~1억2250만원, 전세가는 1억∼1억2000만원이었다.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내주려면 집을 팔아도 1500만원 정도 부족한 깡통주택이 돼버렸다. 강원 원주는 최근 2년 새 아파트값이 9.68%, 전셋값은 11.23% 각각 하락했다.
세입자들, 깡통주택 걱정…갭투자 쓸고가니 시장왜곡
깡통주택·깡통전세가 증가하면 서민(세입자)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린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법적 다툼으로 번지기 일쑤라서 집값 폭등 못지않을 정도로 사회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고 있다. 서울과는 정반대로 집값 하락에 따른 주택시장 붕괴가 가져온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규제 정책으로 주택 공급 부족이 우려되면서 서울 집값이 급등했다"면서 "앞으로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기대 심리가 확산되면서 사람과 자금이 계속 서울로 몰리기 있디"고 진단했다.

최근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된다"며 "지방 부동산의 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가 입는 것 아니냐"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지방 부동산시장에선 정부가 서울 집값 잡는 데에만 혈안이 돼 깡통 전세까지 나오고 있는 지방의 주택 시장 문제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편 갭투자들이 쓸고 지나간 시장을 세입자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충북 청주가 대표적이다. 6·17 대책 때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이면서 매수세가 멈췄고, 7·10대책으로 세금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갭투자자들은 매물을 던지고 있다.

계약날짜에 따라 다르지만, 전세와 매매 차이가 덜 나는데다 매물들이 급매로 나오다보니 호가가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매물들의 가격이 기존 전셋값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에도 나오고 있다. 시장가격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들은 혹시나 깡통전세가 되거나 경매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복대동의 A공인중개사는 "정부가 갭투자를 잡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이 때문에 지방 부동산 시장은 얼어죽게 생겼다"라며 "외지인 수요들이 유입되면서 시장이 활기를 띄다가 이제는 급매가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세입자로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은 이제라도 집을 사야하나 고민인 상황인데, 조정대상지역이 되면서 대출도 줄어들어 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끝)

김하나 /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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