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회사채 ‘편법’ 발행의 부작용

입력 2020-07-29 16:05   수정 2020-07-29 17:05

≪이 기사는 07월29일(09:13)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롯데그룹 계열사를 중심으로 ‘장기 기업어음(CP)’ 발행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본래 1년 이상 장기 자금조달 목적이라면 회사채를 찍는 게 정상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자금조달 환경이 급격히 변해버린 탓입니다.

2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두 달 동안에만 롯데지알에스(만기 2년, 발행금액 200억원), 호텔롯데(2년 4개월, 3000억원), 롯데쇼핑(3년, 2000억원) 등 롯데 계열사들이 대규모 장기 CP를 발행했습니다. 롯데하이마트는 다음 달 6일을 목표로 첫 번째 장기 CP 발행(2년, 1000억원)을 준비 중입니다.

우량한 신용을 자랑하는 롯데 계열사들은 코로나19 이전에 주로 공모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발행에 앞서 실시하는 기관투자가 대상 경쟁입찰(수요예측) 때 충분한 수요를 모을 경우 가장 저렴한 이자에 자금을 조달 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기관들의 수요예측 참여 부진으로 모집금액조차 못 채우는 사례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롯데를 비롯한 일부 기업은 이자비용을 충분히 아끼지 못할 바에 차라리 장기 CP를 발행하자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소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사모(私募) 발행하는 CP의 특성상 수요예측과 같은 성가신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되니까요.

최근 발행하는 장기 CP의 이자비용은 회사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롯데하이마트가 다음 달 발행할 예정인 CP의 경우 같은 만기의 자사 회사채 금리(개별민평 수익률)에 0.25%포인트를 가산한 금리(할인율)를 적용키로 했습니다. 가산금리는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보너스’인데요. 수요 과잉 때문에 주로 ‘마이너스’ 가산금리를 적용했던 작년 회사채시장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입니다.

문제는 롯데처럼 장기 CP 발행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기업금융시장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적정 가격 탐색 기능의 약화입니다. 발행가격(금리)을 결정하는 가장 투명하고 합리적인 방식인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CP 같은 사모 금융상품은 유통 정보도 빈약합니다. 기업이 회사채(장기) 신용등급 평가를 받지 않아 신용평가사의 ‘워치독(watch dog)’ 역할도 일부 제한됩니다.

자본시장의 근간인 장기 조달 창구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입니다. 수요 부족을 이유로 떠나는 기업이 늘면 한국 회사채 시장은 몇몇 초우량 기업 전유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같은 비우량 회사채시장 육성의 꿈은 더욱 요원해질 것입니다.

금융당국은 과거 장기 CP 발행이 급증하자 ‘만기 1년 이상 CP 발행 때 (회사채처럼)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화(2013년부터)’ 등 규제 강화를 발표한 경험을 갖고 있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한 장기 CP 발행이 대유행하기 전에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