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弱달러인데…원·달러 환율만 두달째 박스권

입력 2020-08-03 17:11   수정 2020-08-04 01:28


최근 두 달 새 원·달러 환율이 1190~1210원의 ‘박스권’을 맴돌고 있다.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국 통화와 비교한 미국 달러 가치(달러인덱스)는 지난달에만 4% 하락하는 등 약세가 완연하지만 원화 가치 상승세(원·달러 환율 하락세)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한국 가계와 기업들의 달러 보유 움직임 강화, 수출액 감소, 개인들의 미국 주식 매수 확대 등이 영향을 준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강력한 환율 저항선 ‘1190원’
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2원10전 오른 1193원40전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6~7월 내내 1190~1210원에 갇혀 있었다.

반면 달러 가치는 뚜렷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이날 93.4를 기록했다. 올해 고점인 3월 19일(103.6)에 비해 9.8% 하락했다. 달러인덱스는 지난달에만 4.1% 떨어져 월간 기준으로 2010년 9월(-5.4%) 후 최대 낙폭을 보였다.

달러 대비 유로 가치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유로·달러 환율은 지난달 31일 유로당 1.178달러로 마감했다. 달러 대비 유로 가치는 올해 저점 대비 10.1% 상승했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가치가 내려간 것은 코로나19 백신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 위험자산 투자 수요가 커진 데 따른 것”이라며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가 주춤한 것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달러 모으는 가계·기업
달러가 힘을 못 쓰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몇 가지 요인이 겹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선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려는 수요가 크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달러를 모으려는 개인·기업의 수요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6월 말 기업 달러예금 잔액은 전달보다 23억3000만달러 늘어난 579억9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개인이 보유한 달러예금 잔액도 6월 말 154억7000만달러로 전달보다 12억1000만달러 늘었다. 기업과 개인의 달러예금 잔액은 올 3~6월에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올 들어 수출이 줄면서 기업들의 달러 매도 움직임이 약화된 것도 원인이란 설명이다. 통상 기업들은 제품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맞바꾸는데 그 과정에서 원화 가치가 뛴다. 올해 1~7월 누적 수출액은 2834억7300만달러로 작년보다 10.6% 줄다 보니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매물도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학 개미 운동’도 영향
일각에서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 테슬라, 애플,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등 미국 주식을 사들이려는 이른바 ‘서학 개미 운동’도 원화 가치 하락을 유발하는 요인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거래대금(매수·매도)은 709억1055만달러로 작년 상반기(180억7406만달러)의 세 배를 웃돌았다.

외국인이 올해 2월 이후 국내 증시를 등진 것도 원화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며 25조708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한국 주식 매각대금을 달러로 환전하는 이들의 수요는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앞으로도 원·달러 환율의 낙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회복 속도가 더디고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수세도 크지 않다”며 “미 대선이 열리는 11월까지 환율이 1170~1230원 선을 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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