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가격통제는 언제나 실패로 끝났다

입력 2020-08-03 17:57   수정 2020-08-04 00:10

‘스타일리스트’ 기질이 다분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마음 상태를 휴대폰 컬러링(통화 연결음)으로 표현하곤 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되고 나서도 컬러링을 바꾼 게 화제가 됐다. 영국 가수 알 스튜어트의 ‘베르사유 궁전(The Palace of Versailles)’이란 노래로, 1789년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급진파 당수이자 공포정치의 상징이 된 로베스피에르가 등장한다. 당시 김 위원장은 “혁명의 덧없음을 얘기한 노래”라며 “나는 로베스피에르가 되지는 않겠다”고 했다. “혁명의 방법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게 세상을 조금씩 누적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 말을 듣고 ‘새 정부가 영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는 않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 적이 있다.

최근 정부가 펴고 있는 정책을 보면서 문득 로베스피에르가 다시 떠올랐다. 김 실장이 닮고 싶지 않다던 로베스피에르가 지금 정부와 너무나도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가격통제가 단적으로 그렇다. 혁명으로 권력을 거머쥔 로베스피에르는 민심을 얻기 위해 온갖 과격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게 우유가격 반값 통제였다. “모든 프랑스의 어린이는 값싼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 의도는 착했다.

그러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건초보다 싸진 우유값에 수지를 못 맞춘 축산농가는 젖소 사육을 포기했다. 우유 생산이 줄자 우유값은 더 급등했다. 당혹스러워진 로베스피에르는 이번엔 건초값 통제에 나섰다.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건초업자들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초를 불태워버렸다. 건초값은 덩달아 치솟았고, 우유값은 예전 가격의 10배까지 폭등했다. 선한 의도는 악한 결과로 이어졌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에 따르면 자본주의 역사상 가격통제가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언제나 시장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가격통제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 60여 년간 물가와의 전쟁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정부가 아직도 물가정책 담당부서를 두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가격통제는 이 정부 들어 더 집요하고 전방위적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조정,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반값등록금, 통신 기본요금 폐지 등의 형태로 시장가격에 개입해 부작용을 낳은 사례들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부동산은 가격통제의 결정판이다. 대출을 조여도 가격이 잡히지 않자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올려 매각을 종용하면서, 동시에 거래세(취득세·양도세)도 올려 퇴로마저 막는 모순된 정책까지 불사하는 정부다. 매물이 잠기고, 집값은 더 치솟고, 집 없는 서민들의 박탈감만 더 커지는 악순환은 당연한 결과다. 분양가 상한제와 임대차 3법은 기름 붓는 꼴이 됐다. 이른바 ‘로또 아파트’를 양산해 현금 많은 부자들만 ‘줍줍’하게 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전세시장을 초토화시켜 서민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가격통제는 나라를 불문하고 역사가 깊다. 그만큼 유혹이 큰 정책이다. 2차대전 중 인플레로 뉴욕의 집세가 급등하자 시 당국은 집세 동결 조치를 내렸다. 집세를 올릴 수 없게 된 주인들은 임대를 포기하거나 창문과 수도가 고장나도 고쳐줄 생각을 안 했다. 주거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결국 피해는 세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런 식의 대응이 실패로 돌아간 사례는 역사를 들추면 수없이 많다. 경제학 교과서(맨큐의 경제학)는 임대료 규제를 두고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혹평했다. 가격통제를 남발하는 이 정부 역시 머지않아 경제학 교과서에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인용될 것이 뻔하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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