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넘는 강남 전세입자도 정부가 보호해줘야 하나요?"

입력 2020-08-04 12:14   수정 2020-08-05 09:59


오랜 기간 무주택자이던 결혼 7년차 직장인 박모 씨(41)는 최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6억원 초반대의 오래된 아파트를 매입했다. 자금 여력이 빠듯했지만 집값이 계속 오르고 설상가상 전세 매물까지 잠기면서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살 곳이 없겠다’는 불안감이 컸다.

그런 박 씨는 최근 정부에 묘한 배신감을 느끼는 중이다. 회사 동기 유모 씨(39)가 서초 반포동에서 20억원이 넘는 전셋집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다. 유 씨는 임대차법 시행으로 최장 4년간 전세를 보장받게 됐다. 박 씨는 “최근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더 없어질 것 같아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비속어)해 간신히 집을 샀다”며 “거주할 곳은 겨우 마련했지만 취득세, 교육세에 앞으로 재산세까지 세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강남에서 고가 전세에 사는 사람들은 세금 부담은 물론 전셋값이 오르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이 4년을 보장받게 됐다”고 허탈해했다.
"강남 세입자보다 사정 어려운 집주인 많다" 볼멘소리
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임대차 3법’이 시행된 후 부동산시장에서는 강남권 고가 전세입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5%)가 도입되면서 지금부터는 세입자들의 전·월세 거주가 4년간 보장되고 세 인상도 최소 범위로 제한된다. 세입자를 상대적 약자로 보고 권리를 대폭 강화해 준 것이다. 문제는 15억원 이상의 비싼 전세를 살고 있는 강남권 세입자들도 법적으로 전세살이를 보호해줘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권에는 어지간한 집값을 훌쩍 넘는 전셋집들이 많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정보시스템을 보면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12㎡는 지난달 22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강남 대치동에선 래미안대치팰리스1차 아파트 전용 114㎡가 지난 6월 22억원에 새 세입자를 찾았다. 이 주택형은 현재 전세 호가만 25억원에 달한다. 그 마저도 매물이 거의 없는 귀한 전세라는 게 대치동 인근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임대차법 개정을 통해 전·월세 세입자들에게 일괄적으로 혜택을 줬다. 이에 집주인들까지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호소하고 있다. 관악구 봉천동 Q공인 관계자는 “15억원 이상 전세를 사는 사람들까지 국가가 나서 임대 기간과 비용을 보장해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서울 외곽에는 강남권 세입자보다 사정이 어려운 집주인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20억 전세입자는 세금 없는데…6억 집주인은 세금 폭탄?"
세금 부담에 대한 논란도 있다. 고가 아파트에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는 세입자와 상대적으로 저가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집주인 중 어느 쪽이 더 세금을 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3억원 아파트 집주인과 20억원 세입자간의 차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 정부는 주택 소유자만 잠재적 부동산 투기꾼으로 보고 있다. 최근 내놓은 세법개정안도 집을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이번에 의결된 부동산 증세 개정안은 다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까지 세금 부담을 크게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동산을 사고(취득세), 보유하고(종부세), 파는(양도소득세) 전 단계에서 세금이 올라간다. 개정 종부세법에 따르면 3주택 이상 다주택자,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율은 현행 0.6~3.2%에서 1.2~6%로 올라간다. 1주택자, 조정대상지역 외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율도 0.5~2.7%에서 0.6~3%로 상승한다.

여기에 공시지가 시세 반영률(현실화율), 공정시장가액비율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는 중이어서 1주택, 다주택, 법인 할 것 없이 종부세 체감 인상률은 더 높을 전망이다. 예컨대 시가 14억원인 1주택 보유자의 경우 종부세액은 올해 28만원에서 내년 82만원으로 거의 세 배가 된다

앞서 언급한 박 씨의 경우에도 6억원대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 830여만원의 취득세, 교육세 등을 냈고 매년 재산세도 내게 됐다. 그나마 9억원 이하 주택이라 종합부동산세는 내지 않는다. 하지만 유 씨의 전세가는 박 씨의 아파트 세 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지만 내야 할 세금은 없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저가의 주택 소유자들 사이에서 과세 형평성을 두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고가의 전세 아파트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면서 “세입자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자는 논의보다는 1주택자에 대해서는 보유세 부과를 조정하거나 거래세를 인하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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