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빅4' 깜짝 실적…일본 경쟁사 압도

입력 2020-08-06 17:10   수정 2020-10-05 16:00

2010년 1월 일본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한국 기업을 기획으로 다뤘다. 제목은 ‘한국 4강 약진의 비밀’. 일본 기업과 비교한 기사에서 닛케이비즈니스는 삼성 LG 현대자동차 포스코를 ‘사천왕’으로 표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성장한 한국 기업의 ‘위기 극복 DNA’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10년 후 세계는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한국 대표 기업들은 코로나19가 세계로 확산한 이후 첫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20년 2분기 실적에는 위기에 강한 DNA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삼성전자 LG화학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4대 기업의 실적은 경쟁 관계인 일본 기업들을 압도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 늘었다. SK하이닉스의 이익 증가율은 205%에 달했다. 현대차가 가장 부진했다. 52% 줄었다. 하지만 이마저 일본 경쟁 업체들을 압도한다. 도요타의 이익은 98% 급감했고 혼다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LG화학이 파나소닉을 추월한 것은 인상적이다. 파나소닉은 작년 상반기까지 세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 1위였다. 하지만 올 2분기 영업이익은 415억원에 그쳤다. 전년 대비 93%나 줄었다. LG화학은 공격적인 영토 확장으로 전기차 배터리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익은 131% 급증했다. 시가총액도 역전했다. LG화학 시가총액은 6일 48조원을 넘어섰다. 저점이던 지난 3월 19일엔 16조2000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파나소닉 시총은 19조3000억원에서 25조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빅4’의 선전은 한국 주식시장 회복을 이끌었다. 최근 코스피지수는 2300선을 돌파했고, 코스닥지수는 850을 넘어섰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세계 주요 10개 지수 중 6위에 머물렀다.

닛케이비즈니스는 10년 전 “한국 기업은 위기에 더 과감히 투자해 한번에 점유율을 올리고, 미래를 준비한다”고 평가했다. 2분기 한국 대표 기업의 실적은 그 DNA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코로나 뚫은 빅4 '혁신 DNA'…日 라이벌 추월해 시총 80兆 격차
지난 3월만 해도 한국 대기업의 앞날은 어두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글로벌 플레이어인 대기업들에 치명적이었다. 국내 정치 지형은 ‘친기업’보다 ‘반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분쟁도 악재였다. 10년 전 삼성 현대자동차 LG를 이끌던 수장은 모두 바뀌었다. 최태원 회장이 오래전 지휘봉을 잡은 SK에도 시장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오너들이 ‘코로나19 시험대’ 앞에 선 셈이다.

이들이 주도한 2분기 실적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세대교체를 이뤘지만 한국 대기업의 전통에 새겨져 있는 ‘위기 극복 DNA’는 그대로 전해졌다고 할 정도의 실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생존을 걱정할 때 이를 ‘변화의 기점’으로 삼아 변신을 꿈꾸고 있다.
친환경차·배터리 기업으로 변신
시장의 평가는 시가총액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 자동차업계 1위 도요타의 시가총액은 231조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저점(3월 19일)보다 1% 더 줄었다. 글로벌 불황에 도요타도 어쩔 수 없었다. 현대자동차 시가총액은 30조원으로 기아차와 합쳐도 50조원이 안 된다. 하지만 저점 대비 현대차는 90%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회복탄력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다.

이는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저점 대비 32% 올랐다. 비교 대상 기업인 소니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339조원에 달한다. 과거 삼성의 라이벌이었던 소니는 117조원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삼성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저점 대비 상승률은 소니와 비슷한 32%를 기록했다.

한국의 삼성전자 LG화학 SK하이닉스 현대차와 일본의 4대 기업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의 시가총액 변화를 비교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3월 19일 한국 4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337조원이었고, 일본은 387조원이었다. 코로나19를 거친 8월 3일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470조원, 일본은 390조원으로 역전됐다.
새로운 리더의 시험
이런 역전을 가능케 한 것은 한국 기업들의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와 새로운 리더십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취임 후 일성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그룹 내 포트폴리오를 선제적으로 정리해 위기에 대비했다. 대신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 LG화학은 상반기 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분기에는 전지부문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이 되면 전지부문 매출이 기존의 주류였던 석유화학부문 매출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했다. 충전해서 다시 쓸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들겠다며 고(故) 구본무 회장 때부터 약 28년간 진행한 ‘집념의 투자’가 이뤄낸 결실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차도 독일 다임러벤츠, 미국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업계가 줄줄이 적자의 늪에 빠진 가운데 5903억원의 깜짝 흑자를 냈다. 환율 효과에 선제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한국에서 제네시스 등의 인기가 폭발적이었기 때문이다. 도요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8% 줄어든 1560억원에 불과했다.

시가총액이 늘어난 것은 단순히 실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친환경차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수소차와 전기차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현대차가 내연기관차 시대의 순위를 뒤집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메모리뿐 아니라 비메모리 1등까지
삼성전자는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기대에 투자가 몰렸다. 삼성전자는 이미지 센서 부문에서 소니에 이어 2위, 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 TSMC에 이어 2위다. 점유율 격차도 꽤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에 투자가 이어지는 것은 총수가 이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133조원을 시스템반도체에 투자해 업계 1위가 되겠다고 발표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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