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 [최만수의 전기차 배터리 인사이드]

입력 2020-08-14 09:42   수정 2020-08-14 14:01


"지금은 자동차 업체가 갑, 배터리 업체가 을이지만 5년만 지나보세요. 갑을이 바뀔 수도 있어요."

지금 전기차 시장의 주인공은 단연 테슬라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테슬라를 넘어 점점 배터리 업계로 향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수순입니다. 전기차의 성능은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가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전기차의 성능은 어떤 배터리를 탑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난달 31일 LG화학의 콘퍼런스콜은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콘퍼런스콜은 절반 이상 영어로 진행됐습니다. 골드만삭스 크레디트스위스 JP모간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의 콘퍼런스콜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입니다. 홍콩에서 근무하는 한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주가 상승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판단하지 말라"며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고 전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몇년전부터 '제2의 반도체'라 불려왔습니다. 한국 산업의 주력인 반도체를 잇는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연 180조원으로 메모리 반도체(150조원)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 중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가 하나라도 나와준다면, 한국 제조업에 미칠 낙수효과도 상당할 것입니다. LG화학은 올해 1분기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출하량 1위에 올랐고, 곧이어 2분기 영업이익 5716억원을 거두며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습니다. 높은 잠재력에 비해 수익성이 불확실하다는 시장의 의구심을 잠재웠습니다. 과연 'K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요.

① 중국 업체들의 기술 어디까지 왔나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점들이 있습니다. 시장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중국의 추격입니다. 일각에선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과 경쟁으로 전기차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가 아닌 '제2의 LCD'가 되고말 것이란 비관론도 내놓습니다. LCD나 폴리실리콘의 사례처럼 시장이 성장하더라도 중국의 치킨게임으로 배터리가 공급과잉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도체는 선발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높은 수익성을 누릴 수 있었지만, LCD는 중국 후발업체들이 빠르게 추격하면서 공급 과잉에 진입했습니다. 시장 진입장벽의 차이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LCD보다 반도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7~8개 상위 업체들과 나머지 후발 업체들 간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2015년부터 전기차 시장을 공격적으로 부양하기 시작했고 100개 이상의 중국 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이 중 살아남은 곳은 CATL BYD 정도입니다. 그나마 2위인 BYD의 점유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3위인 옵티멈나노는 파산하는 등 중국 정부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중국 선발업체들과 후발업체들의 배터리 성능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자 중국 정부는 2018년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줄여 경쟁력 없는 업체들을 퇴출시켰습니다. 현재 CATL을 제외하면 한국을 위협할만한 업체는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입니다. 성환두 LG화학 상무는 "전기자 배터리 사업을 시작하려면 최소한 5~7년 이상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며 "최근 기술 혁신 속도를 감안했을 때, 이제 투자를 시작해서는 선발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② 원가 경쟁력에서 유리한 한국 업체들
숫자로 비교해볼까요. 삼성전자의 2분기 반도체 영업이익률은 29.8%입니다. LG화학의 2분기 배터리 부문 영업이익률은 5.5%입니다. 아직 배터리 업체들의 수익성이 반도체와 비교하기에는 민망할만큼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실적으로 잡히고 있는 수주가 2~3년 전에 계약한 물량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당시만해도 배터리 회사들은 '을'이었습니다. 협상력이 약했습니다. 배터리 시장이 상위 7~8개 업체들의 과점 시장으로 재편된만큼, 배터리 업체들의 목소리는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업체들이 화학산업 기반 회사란 점도 강점입니다. LG화학은 배터리 원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양극재를 자체 생산합니다. 내년에는 양극재 소재에 알루미늄을 더한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통해 배터리 핵심소재로 꼽히는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원가 경쟁력에서 앞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수익률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③ 한국이 이끌어 갈 전기차 생태계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한국만큼 미래 모빌리티(이동 수단) 제조 생태계가 잘 갖춰진 나라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율주행차의 '두뇌'인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 동체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배터리를 만드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이 한 나라에 모여있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강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성능좋은 배터리를 만들어도 차체 설계 구조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한국업체들은 해외업체들보다 태생적으로 연구개발(R&D)에 유리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회동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협업에 대한 기대도 커졌습니다. 문용원 신영증권 연구원은 "차세대 배터리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 판도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LG화학의 선전으로 배터리 업계는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입니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실적 성장세도 가파릅니다. 한국 배터리가 반도체에 이어 세계 시장에서 또 한번의 장기집권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옵니다. 기자는 LG화학의 고위관계자들부터 관련 부품·소재업체들의 최고경영자(CEO), 연구원, 증권가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등 수많은 전문가들을 만나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배터리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만큼 커질 것이다. 상위 7~8위 업체들의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 같은 '초격차' 1등 기업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 기업들이 세계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것은 분명하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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