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장마로 드러난 태양광의 '취약성'

입력 2020-08-25 17:09   수정 2020-08-26 05:13

역대 최장인 54일간 이어진 이번 장마로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약점이 드러났다. 태양광이 제 효율을 내려면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달 내내 비가 오면서 발전 효율이 17% 급감했다. 같은 기간 풍력 발전량은 16% 넘게 줄었다. 태풍으로 지나치게 강한 바람이 불면서 발전기가 멈췄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이유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의 기저에는 14세기 인류가 겪은 참혹한 기억이 깔려 있다. 시작은 장마였다. 독일의 역사학자 로날드 D 게르슈테에 따르면 1315년 영국부터 폴란드까지 전 유럽에 100일 넘게 난데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작물은 물론 토양까지 대부분 쓸려 내려가면서 독일에서는 경작 가능한 토지 면적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영국에서는 밀과 귀리의 수확량이 40% 줄었다. 곧이어 극심한 식량난이 벌어졌다. 도처에서 식인 행위가 벌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범죄가 급증했고, 영양과 위생 상태가 악화되면서 전염병이 돌았다. 인구 급감으로 사회 시스템 전체가 붕괴됐다. 이는 1346년 전후로 유럽을 덮친 흑사병의 피해를 더 키우는 요인이 됐다.

2020년에도 극심한 기후변화로 세계적인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600여 년 전에 비해 극히 미미하다. 그간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인간의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덕분이다. 홍수와 전염병, 식량난 모두 국가 시스템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에너지 분야에서는 되레 기후변화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이달 캘리포니아에서는 폭염으로 태양광이 과열돼 효율이 떨어지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되 원자력 발전으로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2040년까지 올해 6.5%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전체의 35%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급격한 속도다.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을 위한 자연 조건이 좋지 않고, 주변 국가나 주(州)에서 남는 전력을 사올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원전은 확 줄일 계획이다.

14세기 장마로 모든 것이 떠내려가자 사람들은 ‘하늘의 벌’을 면하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지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기도를 올리자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 이성이 그만큼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수백 년 지난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국가 에너지 공급의 3분의 1을 전적으로 날씨에 의존하게 되면서다. 정전을 막기 위해 ‘기청제(祈晴祭)’를 지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에너지 전문가들의 우스갯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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