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의 데스크 칼럼] 투자, 문화가 되려면

입력 2020-08-26 17:28   수정 2020-08-27 00:26

단골 순대국밥집에서 조용히 ‘혼밥’을 즐기고 있는데 청년 둘이 옆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앉자마자 주식 얘기를 시작했다. “지난번에 말했던 엔비디아 샀어?” “더 살 걸 그랬어. 벌써 20%나 올랐는데.” “난 AMD로 갈아탔어. 지금 숨고르기 중인데 다시 오르겠지? 연말까지 실적이 계속 좋아질 거라는데.”

곁눈질해 보니 30대 초반은 돼 보였다. 뜨거운 순대국밥의 김이 잦아들 때까지 두 사람의 미국 나스닥 종목 품평회는 한동안 이어졌다. 엔비디아는 지난 3월 저점의 세 배 가까이로 치솟았고, AMD는 7월에만 47% 급등했다. 두 젊은이가 흥분할 만한 상승률이다. 최근 동문회에서 만난 고향 친구는 “20년 넘게 주식하면서 까먹은 돈을 아마존으로 다 메웠다”고 자랑했다.
동학 뺨치는 서학개미들
‘동학개미’에 이은 ‘서학개미’들의 열기가 대단하다. 올 들어 이달 19일까지 국내 투자자가 순매수한 해외주식은 112억5641만달러(약 13조3500억원)어치로 작년 같은 기간의 여덟 배에 달한다. 지난달 개인이 순매수한 해외주식은 약 3조8000억원어치로 국내 유가증권시장 순매수액보다 1조5000억원가량 더 많았다.

증권사들도 바빠졌다. 국내 주식시장은 ‘평생 무료 수수료’ 같은 출혈경쟁에 빠진 지 오래다. 반면 해외주식은 매매수수료는 물론 환전에도 비용을 붙일 수 있어 증권사로선 군침을 흘릴 만하다. 일부 대형 증권사는 올해 해외주식 수수료 수입만 1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서비스도 진화하고 있다. 한 주에 수십만, 수백만원 하는 종목을 1000원씩 또는 소수점 단위로 쪼개 사는 것도 가능하다. 주식 이름을 정확히 몰라도 초성만 입력하면 찾아주는 앱도 나왔다. 2차전지 같은 테마만 제시하면 관련 추천주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된다. ‘잘 몰라도 해외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서학개미의 해피엔딩을 기원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남들 얘기 듣고 몇 번 재미를 볼 수는 있어도 ‘스마트 개미’ 수준에 오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은 이런 경험담을 들려줬다. 거액을 굴리는 개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영업하며 겪은 에피소드다. 기업분석 보고서나 투자정보 제공 서비스를 어떻게 개선하면 더 도움이 되겠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리포트는 그 정도면 됐고, 시장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투자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주는 좋은 글귀를 자주 보내주면 좋겠습니다.”
정석 투자로 유도해야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들도 이 정도인데 분위기에 휩쓸려 대열에 합류한 개미들은 진검승부가 매일 펼쳐지는 주식시장을 견뎌낼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 투자자 교육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2030세대를 새로운 고객으로 끌어들이려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증권사로서도 증시에 새로 진입한 고객들에게 투자의 정석을 제대로 제시하는 것이 길게 보면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잘 몰라도’ 투자하라고 부추길 게 아니라 ‘잘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어느 증권사의 슬로건처럼 ‘투자, 문화가 되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워런 버핏의 동업자 찰리 멍거가 이런 말을 한 것도 비슷한 이유 아닐까 싶다. “잠자리에 들 때는 그날 일어났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똑똑해져 있어야 한다.”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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