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쿠팡 창업자 '범석님'의 '코로나 승부수'

입력 2020-09-01 08:39   수정 2020-09-03 10:31


요즘 유통가에선 두 개의 ‘BC’가 자주 회자된다.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19)’과 ‘쿠팡 이전(Before Coupang)’이다. 코로나19와 쿠팡이 한국인의 소비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꿨고, 그 이전으로의 회귀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 코로나19가 만든 ‘언택트(비접촉)’ 소비는 유통업계의 지형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꿔놓고 있다. 쿠팡은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한국형 아마존을 꿈꾸며 쿠팡을 창업한 김범석이라는 청년 사업가가 선보인 24시간 로켓 배송 시스템은 편리함이라는 소비자 경험치를 거의 극한으로까지 올려놨다.

쿠팡의 시점에서도 코로나19는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1월말 로켓배송 출고량은 역대 최고치인 330만건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할 당시에는 온라인 주문이 폭주하며 한때 로켓배송이 지연되기도 했다. 반대의 현상도 발생했다. 5월27일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자 집단 감염이라는 근거없는 소문들이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아파트를 수시로 드나드는 쿠팡 배달맨에 대한 의심이 뿌리를 내린다면 쿠팡이 공들여 쌓은 신화의 탑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지난달 27일 쿠팡이 공개한 알베르토 포나 쿠팡 CFO(최고재무책임자)의 사내 이메일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한다. 두산인프라코어 등 굴지의 한국 기업에서 재무를 총괄했던 포나 CFO는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는 올해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한 거래량 15%를 증가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연간 약 5000억원 수준의 코로나19 관련 지출을 추가로 부담하게 되었다” 이어 그는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메일을 마무리했다. “위기가 다가올 때 고객은 우리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쿠팡의 인프라에서 근무하고 있는 5만명의 안전과 고객과의 약속을 위한 비용으로 기꺼이 감내할 것이며 이번 위기에서도 손실을 우려해 고객 경험을 희생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 코로나19가 쿠팡에 중요한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 요인이라는 게 포나 CFO의 메시지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재무책임자가 대외적으로 나서는 건 매우 드물다. 게다가 쿠팡이 사내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한 건 더욱 이례적이다. 김범석 대표를 비롯해 3명의 공동 대표 합의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결정이다. 회사 차원의 중대한 변곡점이라는 얘기다.

쿠팡은 대외에 공개한 5000억원 비용과 관련해 코로나19 방역비라고 설명했다. 우선 2500명에 달하는 안전감시요원을 고용했다. 비록 임시직이긴 하지만 이들을 고용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올해 최저임금(179만5310원)을 적용할 경우 한달에 약 50억원이다. 이들은 본사를 비롯해 전국 쿠팡 물류센터에 배치돼 방역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층별 엘리베이터 앞에도 한 사람씩 배치돼 6명 이상 탑승하지 못하도록 안내한다. 쿠팡 관계자는 “물류 센터 내 직원 밀집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하다못해 통근 버스도 좌석을 한칸씩 비운 채 운행해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2배 더 들어간다. 이 밖에 각 건물에 대한 소독 비용, 손 세정제와 마스크 등 각종 방역 물건 비치 등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것이 쿠팡측 설명이다.

쿠팡의 설명대로라면 순전히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비로 지출했거나 향후 지출할 돈이 5000억원이라는 얘기다. 쿠팡이 워낙 일반적인 경영학 상식에 어긋나는 회사라는 점은 익히 알려졌지만 ‘코로나 방역비 5000억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다. 현재 국내에서 1년에 팔리는 냉동만두가 대략 5000억원 어치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매출이 5654억원이었다. 배달앱 1위 회사가 1년치 올린 매출을 쿠팡은 한 방에 비용으로 지불하는 셈이다.

쿠팡 CFO가 밝힌 추가 지출에 관한 내용이 사실인 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는 없을 것 같다. 김범석 창업자는 대외 정보 공개에 상당히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팩트’ 외에는 공개하지 말라는 게 사내 방침으로 굳어져 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중요한 건 어떤 의도로 공개했느냐다. 전문가들은 쿠팡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쿠팡 독식’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방역비로만 이 정도의 돈을 지출할 정도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경쟁자들이 추격할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향후 실적 공개시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라 미리 이유를 설명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쿠팡은 지난해 7조1531억원의 매출에 영업손실 720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1조 1276억원 적자에서 36%를 줄였다. 당시 쿠팡은 이를 ‘계획된 적자’라고 설명했다. 순차적으로 적자를 줄여 2010년 창립 이래 한번도 내지 못했던 흑자를 조만간 낼 것이라는 게 쿠팡이 항상 해오던 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쿠팡은 ‘계획’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됐다. 올해 적자 규모가 다시 1조원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찌됐건 이번 코로나19는 ‘쿠팡의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예측하기 어려운 비상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과 비교했을 때 이런 난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플랫폼 업체들은 물류센터를 갖고 있지도 않고, 배달원을 고용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플랫폼에 쌓이는 데이터를 활용해 쇼핑 시장을 휩쓸고 있다. 쿠팡은 스스로를 유통업체가 아니라 IT 기업으로 불리길 원한다. 쿠팡의 혁신은 결국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무인화로 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겪게 될 진통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쿠팡의 미래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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