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육아 우울증…"집이 감옥 같아요"

입력 2020-09-09 17:32   수정 2020-09-25 16:08


‘싱글맘’ 직장인 이도윤 씨(39)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이 발표된 지난달 28일 이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날 일곱 살 아이가 다니던 합기도학원이 거리두기 조치로 문을 닫는다는 연락이 왔다. 긴급돌봄이 끝난 뒤 한두 시간 애를 맡아주던 곳이 사라지면서 아이가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도우미가 필요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는 친정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아이가 좋아하는 서점, 도서관도 못 가게 되면서 주말이면 온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아이도 지치고, 나도 지친다”며 “평일에도 아이가 집에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040 부모들의 돌봄 부담이 커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육아지옥’ ‘육아우울증’ ‘육아감옥’을 호소하는 젊은 부모들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와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돌봄 관련 상담은 510건으로 전년 동기(30건)에 비해 17배 증가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쉬는 부모도 많아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민간 부문에서 육아휴직을 한 노동자는 6만205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12.5% 증가했다. 학부모들은 학교도 학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의 학업 공백까지 떠안았다. 맘카페 등에는 육아 스트레스로 가정불화까지 생겼다는 글이 적잖게 올라오고 있다.
"아이 맡길 곳 없어 휴직"
조부모에 맡기며 근근이 버텨…남성 육아휴직 올 34% 늘어
프리랜서인 구모씨(34)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하던 일을 90% 가까이 줄였다. 5세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로 하면서 육아 비중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감염 확산이 줄어든 지난 6월 즈음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늘렸지만 8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이후부터는 아예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집에서 보내고 있다. 구씨는 “일 때문에 피치 못하게 나가야 할 사정이 생기면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다”며 “돌봄 서비스는 아무래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라 감염이 걱정돼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들의 희생으로 버티는 것”
코로나19 대유행 앞에서 3040 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비상이 걸렸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돌봄 문제를 가족끼리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휴직하고 싶어도 경력단절 때문에 할 수 없다는 토로도 나온다. 구씨는 “일을 완전히 끊으면 다시 안 들어올 것 같아서 쉽게 그만둘 생각을 할 수 없다”며 “맞벌이 부부인데 수입을 더 줄이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고등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2학년 두 자녀를 둔 주부 김세진 씨(43)는 “코로나 국면은 엄마들의 희생으로 버티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남편은 일한다는 이유로 양육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엄마들끼리 ‘돌밥’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이러다가 밥하다가 돌아버리겠다’는 뜻”이라며 “나가면 코로나19에 감염될까봐 집 안에만 있다 보니 우울감이 커지고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진다”고 호소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코로나19 확산 후 부부싸움이 크게 늘었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양육 부담이 커지다 보니 재택근무, 근로시간 단축제 등을 활용하는 사람도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노동자가 하루 1~5시간 근로를 단축할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한 근로자는 모두 7784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5025명(182.1%) 급증했다.

육아에 참여하는 ‘육아빠’도 늘었다. 만 3세 아들을 키우는 민모씨(40)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2월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며 “아이를 돌보고 재운 뒤인 오후 10시가 진짜 출근”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박모씨(40)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 잠원동에 있는 부모님 댁에 맡기고 출근한다”며 “집에서 회사가 있는 광화문까지 20~30분이면 충분한데 요즘엔 잠원동에 들르느라 출근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남성 육아휴직도 증가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민간 부문에서 육아휴직을 낸 남성 노동자는 1만4857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3776명(34.1%) 늘었다.

육아에 투입되는 시간이 늘다 보니 스트레스도 크다. 육아 관련 스타트업 맘편한세상이 자사 부모 회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1.2%가 ‘스트레스 지수가 높거나 매우 높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가 높은 이유로는 응답자의 80.8%가 ‘외부 활동 축소’, 62.9%가 ‘육아 시간 증가 및 돌봄 계획 변동’을 들었다.
아이들 걱정도 많아져
양육에 따른 체력적, 정신적 부담도 크지만 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집에 갇힌 아이들이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 네 살 쌍둥이 딸까지 3남매를 키우는 석혜림 씨(39)는 각종 장난감에다 미끄럼틀과 탁구대까지 사서 집을 ‘키즈카페’처럼 꾸몄다. 하지만 아이들은 만족을 못한다. 석씨는 “지금쯤 소풍 가고 운동회 하면서 친구들하고 한창 놀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애들이 숨이 안 트여 짜증이 차오른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자녀의 학습 결손도 고민이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의 유치원과 고3을 제외한 초·중·고교는 오는 20일까지 등교를 중단했고 원격수업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학원에도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교 교사 5만10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원격교육 시행 이후 학습 격차가 커졌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종식까지 양육 휴가를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인수 굿네이버스 사업기획팀장은 “한부모, 맞벌이 부부, 조손가정 등 아이들에게 학습 결손이 나타날 수 있다”며 “자녀돌봄휴가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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