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 사학계는 물론 어떤 정치세력도 평가에서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위인도 있다. 안중근 의사가 대표적이다. 그런 안 의사가 난데없이 정치 공방의 한가운데 등장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지난 16일 “추(미애) 장관 아들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추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특혜 의혹이 연일 불거지자 추 장관을 감싸겠다고 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기가 찬다는 반응이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금도를 넘어선 최대의 망언”이라며 “정신 줄을 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온라인에는 “여당이 ‘자기 편’을 지키기 위해 미쳐가고 있다”는 격한 표현까지 등장했다.
여권이 ‘내 편’을 위해 엉뚱한 역사 인물을 동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중종 때 개혁을 추진하다 모함을 당한 조광조 선생이 떠오른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그를 이순신 장군에 빗대기까지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을 싸고 도는 것도 모자라 역사 인물을 끌어들이는 건, 궤변을 통해 논점을 흐리게 하려는 수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오죽하면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유관순 열사, 추 장관을 옹호한 정청래·김남국 의원은 계백 장군”(서민 단국대 교수)이라는 씁쓸한 풍자까지 나오겠나. 물론 정치권의 이런 행태는 지금 여권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과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비선 실세 최서원 씨의 딸 정유라 씨를 두둔하는 글을 쓴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에 대해 “유관순 열사 같은 분”이라며 응원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가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판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는 “논란이 계속되면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규제법’ 만들기 좋아하는 여당이 왜 ‘역사 인물 무단 인용 금지법’은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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