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야기] (1) 국내에 단 하나 뿐인 공공기관 말뚝법 '국민연금법 27조'

입력 2020-09-21 09:26   수정 2020-11-01 11:36

≪이 기사는 09월17일(06:4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의 주된 사무소 및 제 31조에 따라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의 소재지는 전라북도로 한다. (국민연금법 제27조 1항)"

2013년 6월 국회는 여야 합의로 이같은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과시켰다. 이전까지 국민연금법 제27조는 "공단의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규정했다. 이것을 전북(전주)으로 못박으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개정안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소재 지역으로 '전라북도'를 지목하면서, 그곳에 있어야 하는 대상에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가 포함되어 있음을 특별히 명시했다. 규모 기준 세계 3대 연기금으로 불리는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까지 전주로 이전시킨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함께 정치 거래물된 국민연금

이 조항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국민연금처럼 지방으로 이전한 어떤 공공기관 근거법 어디에도 그 기관의 소재지를 특정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 건강보험공단, 한국수력원자력 등 대형 공공기관들도 모두 지방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법에 그 기관의 소재지를 규정한 경우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연기금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기금운용본부)를 콕 집어 명시한 것도 국민연금법만의 특징이다. 지난 6월 기준 75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비슷하게 기금을 운용하는 공무원연금(10조원), 사학연금(18조원) 역시 제주, 나주로 이전했지만 이런 조항이 법에 담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조항이 만들어졌을까. 이 조항의 탄생은 노무현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하나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국민연금의 행선지는 전주가 아닌 경상남도 진주였다.

국민연금이 이전 대상이 되면서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는 하나의 정치적 거래물이 됐다. 먼저 국민연금 자체가 거래됐다. 2011년 진주로 LH를 통이전하는 대신 국민연금이 전주로 가는 것으로 소위 '딜'이 이뤄진 것이다.

국민연금의 행선지가 정해지자, 전선은 기금운용본부 이전으로 옮겨갔다. 2009년 공단의 이전에도 기금운용본부는 경쟁력 약화 우려 등을 이유로 서울 잔류가 확정됐지만 판이 뒤집어진 것이다. 전주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기금운용본부 없는 국민연금 이전은 앙꼬없는 찐빵"(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며 기금운용본부까지 통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롯해 금융권은 난색을 표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금운용본부의 전문성·독립성 강화를 위해 기금운용공사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거대 기금의 비효율성을 해소하기 위해 기금운용기능을 별도 공사화하고, 서울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금융허브 구상과 결합해 해외투자를 확대해나간다는 구상이었다.



◆문재인 공약된 기금본부 이전...전북 표심 잡기에 동원

정부 뿐 아니라 금융권과 전문가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 사실상 서울 잔류로 가닥이 잡히던 판을 뒤집은 것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였다. 문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완전 이전을 꺼내 들면서 이전을 둘러싼 논쟁이 경제적 효과성 문제에서 전라도 표심 잡기라는 정치적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전라도에서 입지가 탄탄하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치고 나가자 기금운용본부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쳐온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와 새누리당 역시 이전에 찬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다만 기금이사 등 본부 수뇌부와 행정 기능을 전주로 옮기되 서울에 사무소를 둬 일선 운용인력을 남기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집적의 이익이 큰 금융의 특성상 국민연금과 거래하는 국내외 금융회사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홀로 떨어져 있을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선의 승자는 박근혜 후보에게 돌아갔지만 기금운용본부 이전론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남았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펀드 매니저를 빼고 보내겠다고 한 것은 부서 문패만 형식적으로 보내겠다는 또 다른 기만"(김성주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전주덕진)이라는 공세가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선 직전인 2012년 11월, 새누리당이 절충안을 제시하며 표심 잡기용으로 발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여당의 발목을 잡았다. "공단의 주된 사무소와 기금운용본부의 소재지는 전라북도로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새누리당 스스로 내면서 개정을 막을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반대 의견에도 2013년 6월 국민연금 개정안은 '기금운용본부'를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의 소재지'로만 문구가 달라진채 통과됐다.

국내에서 일개 공공기관과 그 기관의 일부 기능의 소재지를 특정 지역으로 정한 유일한 법인 국민연금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9월22일 오전 (2)편으로 이어집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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