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공여 추가한도는 中企에만’ 비현실적 규제에 대형증권사들 45조원 못쓰고 남겼다

입력 2020-09-24 15:41   수정 2020-09-24 15:43

자기자본이 3조원이 넘는 대형증권사(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이 대출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신용공여 한도를 절반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로 부여된 신용공여 한도를 중소기업에 대해서만 쓰도록 묶어놨기 때문이다.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6월말 기준 8개 종투사의 신용공여액은 35조9억원으로 집계됐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원칙적으로 자기자본의 100% 이내에서 투자자 신용공여(주식담보대출 등) 및 기업금융 관련 대출을 할 수 있다. 다만 자기자본 3조원을 넘겨 종투사로 지정되면 기업에 대한 직접대출은 물론 중소기업 및 기업금융 업무에 한해 자기자본의 200%까지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투자은행(IB) 육성 차원에서 일정 수준 이상 자본력을 갖춘 대형증권사에 대해서는 은행처럼 기업대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8개 종투사의 자기자본 합계는 6월 말 기준 40조2084억원이다. 신용공여 한도(자기자본의 200%)는 80조4168억원이 된다. 종투사들은 이 중 43.5% 가량만 신용공여에 사용했다. 쓰지 않고 남은 한도는 45조4159억원에 이른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신용공여액이 6조2554억원으로 사용률이 36.8%에 그쳤다.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도 50%를 밑돌았다.

증권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규제 탓에 신용공여 한도를 마음껏 활용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종투사 지정으로 늘어난 신용공여 한도(자기자본의 100~200% 구간)는 중소기업이나 기업금융 업무에만 써야 한다”며 “은행에 비해 여신업무 관련 전문성이 떨어지고 조달금리가 높은 증권사들이 리스크가 큰 중소기업 대출을 무턱대고 늘리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자 추가 신용공여 한도를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금융에 활용하는 증권사들도 생겨났다. SPC는 상당수가 명목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돼 추가 신용공여 한도를 적용받을 수 있다. 6월 말 기준 종투사의 중소기업인 부동산 SPC에 대한 신용공여액은 1조4436억원으로 작년 2월(6977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연초 업무계획에서 종투사의 고유재산(PI) 투자 활성화를 위해 신용공여 추가한도에 중견기업을 포함하고 SPC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은 제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달 초 내놓은 뉴딜금융 지원방안에는 종투사가 추가 신용공여로 뉴딜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업계에서는 "애초에 비현실적인 규제를 해놓고 상황에 따라 정부 입맛대로 신용공여 한도를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윤창현 의원은 “당국이 투자 활성화를 위해 자본력을 갖춘 대형증권사에 신용공여 추가한도를 부여해놓고도 사용처를 중소기업에 한정해 45조원이 넘는 자금이 방치되고 있다”며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보다 생산적인 영역에 지원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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