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시 나라의 기본을 생각한다

입력 2020-09-25 17:30   수정 2020-09-26 00:03

대한민국 국민이 사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참극으로 인한 국민 충격이 너무도 크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북한의 비인간적 만행은 이대로 묵과할 수 없다. “불미스럽고, 대단히 미안하다”는 ‘대남통지문’ 하나로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정부는 국내외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도발적 만행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여당 일각의 반응을 보면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란 무엇이며, 정부와 공직은 어떤 존재인가. 나라의 기본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냉철한 자성 없이는 사회 발전도, 경제 성장도, 국민 화합도 다 헛구호가 될 것이다. 당장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잘살고 못살고가 무슨 소용이며, 민주주의가 무슨 호사인가.

사태가 사태인 만큼 먼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표류 중인 우리 국민을 바닷물에 둔 채 취조하다 총살한 북한을 지켜봤다는 군 당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북한에 대해서도 ‘말로만 규탄’하고 그냥 넘어갈 것인가. 어제 국군의 날 행사에서 대북 응징과 상응조치에 관한 분명한 메시지가 없었기에 거듭 묻는 것이다. 살해·유린을 보고받고도 대통령의 유엔 ‘종전선언’ 연설을 강행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간인 피격을 보고받고도 청와대가 침묵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 그 시간이 10시간이냐, 33시간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신원을 파악하고도, 북의 ‘사살 지시’에 대한 첩보를 접했는데 그냥 있었다면 대통령도, 군도 사과는 물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여권이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을 놓고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몰아세웠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당시 정부 비판글이다. 그 잣대로 보면 현 정부는 어떤가. 국민에게 뭐라고 설명할 텐가.

국민의 생명 보호와 인권 수호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혹도 용납될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여러 의혹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사과할 일에는 국민 앞에 머리 숙여야 한다. 그래야 짝사랑 같은 ‘종전선언’에 매달리지 않고,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굳혀가는 북한의 실체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며, 북한 또한 조금이라도 변할 것이다.

임기 5년의 정권도 문제지만, 군의 안일한 자세도 이대로는 안 된다. 지레 “9·19 합의 위반은 아니다”며 정면 대응을 회피한 채, 북한 감싸기에 급급한 국방부에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국방부가 ‘잘못된 통일부’ 역할이나 자청하고, ‘국내 정치’나 하면 안보는 어찌 되나. ‘월북’ 여부도 부차적 문제일뿐더러, 군이 이런 데서 직무 해태의 핑곗거리를 찾는다면 더 격렬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가뜩이나 ‘추미애 아들 황제휴가 의혹’이 몇 달째 이어지면서 군의 위상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판국 아닌가.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일련의 편향된 정책을 보면 나라의 기본을 묻게 하는 오도된 길이 곳곳에 널렸다. ‘임대차 3법’을 비롯해 위헌 논란 속에 결국 헌법재판소로 가는 보복적 부동산세는 국가 유지의 또 다른 기본축인 과세권이 어떻게 행사돼야 하는지를 새삼 묻게 한다. 학생의 선택권과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뺏는 획일적 고교 평준화 정책과 정부가 사실상 전권을 휘두르는 대학 정책도 마찬가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을 둘러싼 논란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강행 처리를 보면 헌법기관까지 무력화될 판이다. 심판역할을 해야 할 선관위원에 여권 편향 인사를 임명한 것부터 논란거리였지만, 선관위나 감사원 같은 독립기관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고 해서 헌법기관이 행정부에 종속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수처법도 ‘김명수 체제’의 대법원조차 반대한다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애초 형사법 체제는 현대 민주국가를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렇게 ‘삼권분립’이 흔들리면 베네수엘라처럼 퇴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정부실패로 경제와 기업을 망가뜨리는 차원을 넘어 국가의 근간이 무너지는 위기다.

‘이건 나라냐’는 한탄이나, 왕조시대 상소문을 빗댄 풍자가 더 화제가 되지 않도록 집권세력부터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무기력 야당도 문제이고, 진영논리가 먼저인 시민사회도 문제다. 하지만 권한이 다르듯 책무도 다르다. 당장 북한에 대한 대응부터 똑바로 해야 한다. 북한의 사과에서 일말의 진정성이라도 확인하려면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서해 해역을 다 훑어서라도 희생자 시신부터 수습해야 한다. 흙만 남은 70년 전 전쟁의 유해 발굴도 ‘국가사업’으로 하는 판에, 엊그제 희생자를 찬 바다에 버려두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건 국가도, 정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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