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에도 '15억 초과' 아파트 매매 급증한 진짜 이유 [최진석의 부동산 팩트체크]

입력 2020-10-03 08:46   수정 2020-10-05 09:46


정부의 강한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15억원 넘는 아파트 매매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5억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음에도 매매가 늘어난 건 무슨 이유일까요? 전문가들은 다주택자들의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 서울 아파트 가격이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전셋값 급등 그리고 식을 줄 모르는 청약열기와 점점 높아지는 청약점수도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체크해보겠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과 부동산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에서 15억원을 초과한 아파트 매매 건수는 4870건이었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4068건) 대비 19.7% 늘었습니다.

정부는 작년 12·16 대책을 통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에서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초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쉽게 말해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대출 창구를 막아버린 것이죠. 당시 부동산 업계에선 15억원을 넘는 집을 사면서 대출을 끼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때문에 초고가 주택에 대한 매매가 완전히 얼어붙을 것으로 내다봤죠. 그런데 정반대로 매매량이 20%나 늘어난 겁니다.

올해 8월까지 서울 25개 구 가운데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 매매가 발생한 자치구는 18곳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중 강남구만 제외하고 나머지 17개 구에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증가했다. 강남구는 1396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1559건)보다 10.5% 감소했습니다. 그럼에도 숫자만 보면 상당한 거래건수를 나타냈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있는 점을 고려했을 땐 상당한 수치죠. 서대문구는 2건에서 29건으로 늘어 증가 폭이 14.5배에 달했습니다. 동작구는 6건에서 47건으로, 성동구는 49건에서 184건으로 증가해 각각 7.8배, 3.8배로 뛰었습니다. 중구(2.4배), 마포구(2.3배), 광진·종로구(2.2배), 영등포구(2.0배)도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준공 3년차인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e편한세상신촌2단지 전용 84㎡는 올해 6월 17일 처음으로 15억원(17층)에 매매 계약된 이래 지난 7월31일 16억500만원(11층)까지 오름폭을 확대했습니다.

입주 10년차인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한강센트레빌 전용 84㎡은 작년 12·16 대책 직전인 12월10일 14억9500만원(16층)까지 올랐으며 지난달 1일 10층이 15억4000만원에 손바뀜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6·17대책과 7·10대책을 통해 다주택자를 겨냥한 초강도 부동산 규제가 나오면서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심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강도 높은 23번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집값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실수요 중심으로 아파트 매수에 나선 것입니다. “지금 안사면 강남권 입성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조바심이 작용한 것이죠.

주택임대차 3법이 지난 7월 말 시행된 후 전셋값이 급등한 것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매물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전세 공급이 수요보다 줄어들면서 가격은 급등했죠. 튀어오른 전셋값은 집값을 받쳐주는 대들보 역할을 했습니다. 집값 급등으로 인해 전세가율이 50% 수준이었는데, 전셋값 급등으로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사이의 ‘갭’이 줄어들자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매수하는 상황이 재현됐습니다. 게다가 새로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인해 아파트를 매수하려면 전세를 끼고 사야만 수월하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강남권 갭투자를 막겠다며 정부가 남발한 정책들이 오히려 강남권에서 다시금 갭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준 것이죠. ‘규제의 역설’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일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에선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만 급등한 게 아닙니다. 청약경쟁률도 급등했죠.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1~9월 서울의 아파트 청약결쟁률이 평균 68대 1에 달했다고 합니다. 역대 최고였던 2001년(61.5대 1)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오는 12월까지 분양 물량이 많지 않고 청약 열기가 지속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역대로 가장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이제 서울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때 경쟁률 100대1은 놀랄 일도 아닙니다. 지난달 수색증산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분양한 ‘DMC SK뷰 아이파크 포레’의 경우 10개 주택형 가운데 3개가 10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부활로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청약 시장에 수요 쏠림이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청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당첨 가점도 고공 행진하고 있습니다. 부동산114가 올해 9월까지 청약을 받은 서울 민간분양 아파트 일반공급 6148가구의 당첨 가점 평균을 구간별로 분석해봤습니다. 그 결과 60점 초과 70점 이하 구간의 가구 수가 3500가구(56.9%)로 가장 많았습니다.

재건축 규제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주택 공급 감소가 예상되는 강남권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경우 올해 최저 평균 가점이 작년 같은 기간 점수(25점)보다 높아진 46점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만점 당첨자가 없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동작구 흑석리버파크자이, 양천구 신목동파라곤 2개 단지의 분양가 9억원 이하 주택형에서 만점통장(84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배우자와 자녀 둘을 둔 4인가구라도 해도 받을 수 있는 최대 점수가 57점입니다. 30대 젊은층은 청약점수 대결로 내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0대를 중심으로 ‘패닉바잉(공황구매)’ 현상이 나타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9월까지는 분양승인을 서둘러 상한제를 적용받은 아파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상한제 적용 주택이 나올 경우 가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청약 당첨권 점수를 더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증가한 15억원 초과 아파트 매매량, 강도 높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버티기에 들어간 서울 아파트 가격, 여기에 전세난과 치열해진 청약경쟁까지... 서울이라는 성이 점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점이 낮을 수밖에 없는 젊은 층은 어디를 노려야 할까요. 물량이 대거 공급되면서 서울보다 경쟁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내 집 마련의 틈새시장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밖에 수도권의 주요 핵심 교통망 주변 아파트를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매수한 뒤 단계적으로 서울 아파트로 갈아타는 것도 전통적인 전략 중 하나입니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분들은 이번 연휴기간 동안 신중하게 전략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분들이 보다 나은 주거환경에서 마음 편안하게 사는 날이 오길 바라봅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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