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국계 보험사가 한국 떠나는 이유

입력 2020-10-06 17:51   수정 2020-10-07 00:13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과거 대제국의 공통점은 ‘관용’이라고 했다. 제국은 관용을 통해 우수한 인력을 받아들여서 제국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은 유대인을 추방함으로써 관용을 버리게 되고, 결국 무적함대의 스페인 제국은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외국회사를 국내에 유치하면 고용창출뿐만이 아니라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선진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맥도날드의 진출로 우리나라 패스트푸드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이 좋은 사례다.

보험산업도 시장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정부는 외국계 보험사의 국내 진출을 허용했다. 그래서 1980년대 말 국내 보험시장 개방으로 미국계 라이나생명을 시작으로 캐나다, 네덜란드, 프랑스계 보험회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이들 외국계 보험사는 경쟁 제한적 조치 철폐를 요구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짐으로써 경쟁이 강화된 국내 보험시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외국계 보험사의 한국시장 진출은 우리나라 보험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했다. 먼저, 사람의 죽음을 논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시대에 재무설계라는 전문서비스 제공을 통해 종신보험을 성공시킨 데가 미국계 푸르덴셜생명이다. 가장의 부재에도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재무설계를 통한 종신보험 판매 성공은 우리나라 보험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외국계 보험회사는 업계 최초로 대졸 남성설계사 조직을 만들어 보험설계사를 전문직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고, 설계사들이 기피하던 저렴한 보험상품을 TM(텔레마케팅)채널을 통해 성공적으로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보험상품 선택의 폭을 넓혀줬다. 또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고령층 대상 상품개발 방향을 제시했고, 모두가 어려워하던 치아보험도 최초로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이렇듯 외국계 보험사는 새로운 판매전략, 상품개발, 경영전략 등을 선보이면서 국내 보험시장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최근 ING생명(네덜란드), 에르고다음(독일), 알리안츠생명(독일), PCA생명(영국), 푸르덴셜생명(미국) 등 외국계 보험회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철수했다.

한국시장 철수의 표면적 이유는 환경악화다. 저성장, 저출산, 저금리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져서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동남아 시장 등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환경악화 요인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시장의 치열한 경쟁도 철수의 한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하에서도 일부 외국계 보험사들은 양호한 실적을 구현하면서 성장해 왔는데, 그런 회사들까지 철수하는 것을 보면 또 다른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원인들 중 하나는 규제를 꼽을 수 있다. 외국계 보험사들은 그동안 한국 보험시장의 규제와 제도의 불투명성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 왔다. 보험업의 특성상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국내 규제의 불투명성은 외국계 보험사들이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어렵게 하거나, 그들이 생각하기에 불필요한 규제들은 본사의 특성을 살린 경영전략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 과거 한 외국계 보험회사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예비인가까지 받았으나, 규제로 인해 자기들만의 상품전략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음을 뒤늦게 알고 회사출범 직전에 철수한 사례도 있다.

외국계 보험사들이 떠나는 이유가 국내 보험시장의 경쟁 격화로 인한 수익성 하락뿐만이 아니라 규제요인으로 인해 미래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라면, 우리의 규제 체계와 보험산업의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스페인은 그래도 세계를 제패한 후 관용을 버림으로써 몰락했지만 우리는 세계를 제패해 보지도 못하고 보험산업이 침체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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