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나랏빚 자신감'…감당할 수 있나

입력 2020-10-07 17:48   수정 2020-10-08 00:14

유례없는 역병에, 유례없는 추경이 진행됐다. 추경에 필요한 돈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4%에 육박하게 된다. 정부는 그 정도 빚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지난 5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에서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빚이 과도한지 판단하는 데에 빌리는 쪽의 주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빌려주는 쪽 판단이 문제다. 그리고 그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평가된 정부의 신용도다.

정부의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평가된 대표적 성적표로 국가신용등급이 있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S&P가 매긴 우리나라 신용등급은 현재 AA로 세계 16등이다. 같은 등수의 나라에 영국, 프랑스 등이 있고, 바로 위 AA+ 등급에 미국, 핀란드 등이 있다. 이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빚 규모는 크지 않다. 영국, 프랑스, 미국 모두 GDP 대비 정부 부채 규모가 100%를 넘는다. 윗등급인 핀란드, 오스트리아도 50%는 다 넘는다. 이렇게 보면 정부의 주장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뒤집어 질문해 보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의 실체가 드러난다. 왜 우리나라는 비교적 작은 부채 규모에도 불구하고 빚을 훨씬 더 많이 진 나라들과 비슷하거나 나쁜 평가를 받는가?

기본적으로는 국제적 신용평가기관들이 서방 국가들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나,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에서 신용을 크게 까먹은 전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에 내재된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상수지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상수지 흑자는 우리나라가 북미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더 빨리 성장하고 든든한 외환보유액을 유지할 수 있는 시작이자 끝이다. 지금까지는 불안하게라도 경제를 견인해왔지만 산업구조의 급변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부문이 바로 경상수지다. 반도체 실적이 널뛰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자동차나 조선산업처럼 경상수지에 기여하면서 높은 고용유발효과도 일으켰던 전통적인 제조업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교역 상대국들의 경기에 얽매이는 것도 경상수지의 큰 불안 요소다.

정부의 대외 신용도에 불안감을 부추기는 또 다른 중요한 단초는 정부 스스로 제공하고 있다. 기업과 민간 경제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역대 최악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정보의 통로를 점하고 있는 외국계 금융회사 임원들은 이미 이명박 정부 때부터 급격하게 규제 환경이 나빠졌다고 평가한다. 정책의 맥락은 공무원들이 잡고 있는데, 이들의 국제적 감각이 안쓰러운 수준인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개선은커녕 폐쇄성과 정치성이 악화일로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서방 국가들을 우호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에는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정성적 평가의 중요성이 녹아 있다. 신용등급을 끌어내리는 방아쇠는 정량적 지표들이 당기겠지만, 악화된 지표들이 어떤 폭으로 얼마나 신속하게 등급에 반영될지는 정부가 그간 대외적으로 쌓은 무형의 신뢰에 달렸다.

나랏빚이 이렇게 늘어도 당장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신용등급이란 상대 평가여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서방 국가들이 크게 망가진 데 따른 반사이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처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분야를 다잡고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대외적 신뢰를 쌓기 위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떤 예상치 못한 시점에 위기를 맞을지 모를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것을 자축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1997년에 외환위기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기억 때문일까? K방역, K팝에 고취된 자신감마저 불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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