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복수의결권, 벤처에만 찔끔 도입할 일 아니다

입력 2020-10-16 17:10   수정 2020-10-17 00:04


정부가 벤처기업 대주주의 경영권 유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기로 해 주목된다. 복수의결권 주식이란 주당 2개 이상의 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을 말한다. 상법에 규정된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받는 모든 주식을 지칭하는 차등의결권 주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정부는 한 번에 한해 주당 10개까지 의결권을 갖는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근거를 벤처기업법에 마련하기로 했다.

많지 않은 돈으로 창업한 벤처기업인들은 외부에서 자금을 유치할 때마다 지분율이 쪼그라들어 경영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난해에는 연매출 1300억원 규모의 한 벤처기업이 300억원의 투자유치를 받는 과정에서 85%였던 창업주 지분이 25%까지 쪼그라든 사례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경영권을 안정시켜 벤처 창업을 유인할 단초를 마련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초부터 논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반(反)기업 성향 시민단체와 학자들의 반대를 의식해 갖은 전제조건을 다는 바람에 ‘제2 벤처붐 확산’이란 당초 취지가 크게 퇴색해 버렸다.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을 비상장 벤처로 한정하고, 상장 후 유예기간(3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상장기업의 경우 기업공개(IPO)를 통해 이미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는 점을 들어 상장사를 발행대상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이는 대다수 벤처기업인들이 꿈꾸는 IPO 의지를 꺾는다는 점에서 창업→육성→상장에 이르는 ‘벤처 생태계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상장사들은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은커녕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3% 이내) 등으로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판국이다. 전체 상장사의 70%가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미국과 정보기술(IT) 기업 상장이 급증하자 차등의결권을 허용해 혁신기업의 상장 기반을 구축한 홍콩·싱가포르와는 너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벤처기업인이 회사를 적극 키우려 하겠나.

미증유의 경제위기 극복이란 당면과제와 세계적 흐름에 비춰볼 때 지금 정부가 기업 경영권 방어장치를 비상장 벤처기업에만 찔끔 허용하고 생색낼 때가 아니다. 상장·비상장, 벤처·중소·중견·대기업 할 것 없이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수단은 있어야 한다. 위기극복도 버거운 마당에 경영권까지 불안하다면, 어느 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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