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헤만의 라이브 칼럼 A3 | 흑과 백의 두 얼굴, MC스나이퍼

입력 2017-08-30 17:21   수정 2018-01-09 11:17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 길만 걸었다.



1988년 홍대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에서 시작해, 2002년 친구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풀어낸 `BK Love`로 대중의 마음을 단숨에 훔쳤다. 이후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 기생일기` `49제 진혼곡` 등의 명곡으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가 하면, 뉴에이지에 빠져들어 피아노 선율을 담은 곡으로 류이치 사카모토, 이루마, 레이첼 야마가타와 같은 거장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새 앨범 <뒤로 가는 남과 여>로 팬들을 다시 만났다. 힙합이라는 파도에 인생을 맡긴 채, 긴 세월 꾸준히 활동해온 그지만 음악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대한민국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1세대 래퍼, MC 스나이퍼(본명 김정유)의 이야기다.



#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음악 세계
10년 전, 구반포역 근처의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서 MC스나이퍼를 처음 만났다. 초면에도 우리는 프리스타일 랩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친해졌다.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그는 놀랄 만큼 변함이 없었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진실한 눈빛이 여전했다. 강한 인상과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깃들어 있고 일상 속에도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배어있다.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된 몸에, 인생을 달관한 스님 같은 미소를 지닌 그의 얼굴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려 있다. 마치 극단적인 흑과 백, 혹은 선과 악을 담은 그의 음악을 닮았다. MC스나이퍼하면 그의 1집 명곡 `BK Love`를 빼놓을 수 없다. 무거운 분위기에 사랑을 속삭이는 래핑. 실제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BK(비케이)의 사랑 이야기를 묵직하게 풀어낸 이 노래는 중독성 있는 리듬과 탄탄한 스토리로 대중의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묻자 그는 웃으며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민망하지만, 그냥 회사에서 시켜서 만든 곡이에요. 감미로운 사랑 곡도 악에 받친 비판 조의 곡도 모두 저의 일부죠. 거친 음악도 부드러운 음악도 모두 제 모습을 담고 있어요. 솔직함으로 만든 작품들은 제가 낳은 자식들과 같죠."

2007년에 선보인 명곡 `better than yesterday`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사실, 처음에 이 곡은 제 앨범에 수록될 계획이 아니었어요. 같은 소속사의 뮤지션 `키네틱플로우`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죠. 영화 <록키 발보아>(2006)의 OST 수록곡인, 빌 콘티(Bill Cont)의 `Going The Distance` 샘플링 사용과 관련해 허가를 받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허가를 받은 시기가 제 앨범 발매일과 운 좋게 맞아떨어지면서 제게 기회가 왔죠" 이 노래를 듣고 나면, 팔굽혀펴기 몇백 개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생긴다. MC스나이퍼의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곡이다.



# MC스나이퍼는 아이돌이 될 뻔했다?
힙합 1세대 래퍼, MC스나이퍼는 음악을 어떻게 시작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오디션을 보러 수많은 회사를 돌아다녔어요. 1993년 즈음, 당시 젝스키스나 핑클 멤버들이 연습생으로 있던 예당엔터테인먼트에 합격했죠. 그 회사에 클론의 구준엽 씨가 `준이`로 있었던, `탁이준이`라는 그룹이 있었는데 `탁이`(본명 이탁) 형님이 제 랩이 맘에 든다며 곡을 주셨죠." 그렇게 MC스나이퍼는 가수 데뷔에 성공한 것일까? "아니에요.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소속사에서 연락이 뜸해지더니, 영문도 모른 채 소속사와의 인연이 끝나버렸어요." 힙합계의 거장인 MC스나이퍼에게도 아이돌 데뷔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는 귀여운 고백에 그와의 벽이 또 한 번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한편으로는, 그가 아이돌이 되었다면 없었을 그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떠올리니 안심이 됐다.

# MC스나이퍼가 생각하는 `쇼미더머니`란?
최근 힙합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연관 검색어는 `쇼미더머니`다. MC스나이퍼는 이 뜨거운 프로그램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것은 분명해요.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다만, 한국힙합이 발전할지 퇴보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인 만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여요." 많은 사람이 힙합에 관심을 두는 것은 래퍼로서 들뜨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한낱 유행이나 예능으로 힙합을 인식하는 일은 분명 위험하다. `쇼미더머니`가 힙합 문화 전파에 있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지적은 예리하면서도, 차분했다.



# 행복한 성장통 : 래퍼, 가장이 되다
언제던가. MC스나이퍼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더니, 20여 일이 지난 후에서야 답장이 왔다. 음반 발매를 앞두고는, 음악 작업에만 미친 듯 몰두한다던 그의 작업 스타일이 궁금해졌다. "음악 작업을 할 때, `왜 이 음악을 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찾는 과정을 만들어요. 동기부여를 위해서 아무도 없는 섬에 혼자 콕 틀어박혀 원주민처럼 살아보기도 하고, 서울역 노숙자들 사이에 섞여서 몇 날 며칠을 보내기도 하죠. 술집에서 3박 4일을 보내며 가사를 쓰기도 했어요." 작업하던 공간이 깨끗해지면, 쓰던 곡도 모두 지워질까 봐 청소도 꺼리는 강박증이 있다는 그. 아티스트로서 그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면서도,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새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그는 새로운 성장통을 경험했다. MC스나이퍼의 결혼식은 신랑이 모자를 쓰고 식을 올려 이슈가 됐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탈모까지 온 적이 있었어요. 치료가 귀찮아 한동안 모자를 쓰고 다녔어요. 삭발한 채, 예식장에 입장하려고 했는데 장모님께서 `김 서방, 차라리 모자를 쓰고 결혼식을 올리면 안 될까?`라고 제안하셨어요. 모자 벗은 제 인상이 무서우셨대요." 신랑이 모자를 쓰고 치른 예식은 이제껏 없었으니 화제가 될 만했다. 더욱이, 힙합의 대명사 MC스나이퍼의 결혼식다운 광경이었으니 말이다.

가장 궁금했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은 원래 제 방식대로 음반 작업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가족들을 배려해, 제 작업 스타일도 바꾸게 됐죠. 요즘은 저만의 음악 작업 방식인 `필일팔(必日八)` 방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칼의 노래>(2001)의 저자 김훈이 하루에 원고 다섯 장은 꼭 쓰려고 책상에 써 놓았다는 `필일오(必日五)`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과의 약속을 만든 것. 결혼 전에는 하루 여덟시간 정도 음악 작업에 몰두했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충실하고 싶은 마음에 요즘은 `하루에 곡의 여덟 마디만 만들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는 그다.

유명한 맛집이나 비싼 술집이 아니더라도,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소주 한 잔도 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부드럽게 대화를 하다가도, 예의 없이 시비를 거는 취객을 한순간에 압도할 것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래퍼. 그의 이야기에 깃든 진솔함에 취해,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기분 좋은 술을 한잔 걸친 듯 긴 여운이 남았다.




진행 PK헤만(가수&래퍼) | 기획· 편집 권영림 (사진=스나이퍼사운드)


티비텐플러스 <PK헤만의 라이브칼럼 A3 : All About Artist >에서는 매주 개성 넘치는 `아티스트(여기서 아티스트란, 창작 또는 표현 활동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넓은 의미의 종합예술가를 칭함)`를 라이브 생방송에 초대합니다. <PK헤만의 라이브칼럼 A3 : All About Artist > 라이브 방송과 VOD 콘텐츠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티비텐플러스(TV10plus)` 앱을 다운로드해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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