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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19년, 세계와 한국 경제를 결산한다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김종학 기자

입력 2019-12-09 09:57  


2019년, 기해년 좋은 일만 있기를 갈망하면서 산과 바다로, 심지어는 마천루 옥상까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올라갔던 일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다 지나간다. 연초부터 나라 안팎의 대형 악재가 터지고 경기까지 침체국면에 접어들면서 우리 국민이 겪은 고통이 심했던 만큼 새 희망을 기원하는 마음은 그 어느 해보다 간절했다.
하지만 올해 세계 경제는 첫날부터 안 좋은 소식이 들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흔들어왔던 미국과 중국 간 무역마찰이 미완성 과제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올해는 ‘미중 간 마찰이 뒤엎은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내 지난 8월에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 넘지 말이야 할 루비콘 강을 건넜다.
미·중 간 마찰이 햇수로 3년째를 지속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해 왔던 세계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올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현안이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와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세계 교역과 경기를 좌우한다.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1990년대 이후 세계교역증가율과 GVC 간 상관 계수를 추정해 보면 0.85에 이를 만큼 높게 나온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탄성치(세계교역증가율÷세계경제성장률)에서 GVC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처럼 대외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타격이 크다.
세계 경기순환 상으로 올해는 2009년 2분기 이후 10년 동안 지속돼 왔던 장기호황 국면이 마무리됐다.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세계 3대 예측기관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비교적 큰 폭으로 내려 잡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하향 조정 폭이 더 크다.
궁금한 것은 세계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자마자 ‘R(경기침체·recession) 공포‘를 뛰어넘어 ‘D(성장률과 물가 동시 마이너스·deflation) 공포’가 곧바로 우려되느냐 하는 점이다. 그 답은 글로벌화와 네트워킹이 급진전됐던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대안정기’와 ‘대수축기’ 이론으로 보면 구할 수 있다.
세계 경기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2009년 6월부터 회복 국면에 들어갔다. 예측기관이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성장률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올해 2분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10년이 됐다. 기간만 놓고 따진다면 1960년대 캐네디∼존슨, 1990년대 부시∼클린턴 성장 국면을 뛰어넘는 전후 최장이다.

주도국은 미국 경제다. 2012년부터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던 일본 경제도 뒤늦게 가세했다. 유럽 경제는 재정위기·브렉시트로 이어지는 통합 균열로 성장 대열에 동참하지 못했다. 중국 경제도 구조병(3대 회색 코뿔소)으로 성장률이 반 토막 났다. 중국 편향적인 중화경제권(한국도 포함)과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경제도 부진했다.
모든 정책은 양면성이 있다. 비상 대책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식 금융위기 극복책과 아베노믹스는 두 가지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하나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 풀린 과잉 유동성, 또 다른 하나는 제로 혹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따라 급증한 과잉 부채다.
‘위기 후 과제(after crisis)’로 통칭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구전략을 적기에 추진해 해결해야 대안정기가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거나, 너무 늦게 추진하면 곧바로 대수축기가 찾아온다. 성급한 출구전략은 ‘에클스 실수’, 너무 늦은 출구전략은 ‘그린스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에클스 실수란 1930년대 위기 극복을 지나치게 낙관해 금리인상 등의 긴축기조로 성급하게 돌아서 대공황을 초래했던 당시 Fed 의장이었던 마리너 에클스의 이름을 따 붙여진 용어다. 조기 출구전략은 어렵게 마련된 경기 회복의 ‘싹(green shoots)’이 노랗게 질려 경기 침체라는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칭송받았던 앨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2004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렸다가 인상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국의 국채매입 등으로 시장금리는 더 떨어지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2008년 이후 금융위기로 연결됐다. ‘그린스펀 실수’다.
각국의 통화정책은 두 가지 실수를 다 저지를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 Fed는 2015년 12월 금리인상을 필두로 시작한 출구전략이 너무 성급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럽은 경기가 받쳐주지 않아 출구전략 추진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아베노믹스의 유혹을 끊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안정기의 내용도 좋지 못하다. 연평균 성장률이 종전 성장 국면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성장의 질도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富)의 효과’로 취약하다. 오히려 금융완화로 돈 있는 사람에게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계층 간 불균형은 더 심해져 뉴욕 폭등 사태가 언제든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출구전략만큼 추진 시기와 선택 수단 그리고 사후 처리 등 3박자를 맞추기 어려운 것도 없다고 한다. ‘출구전략이 정책 예술(‘exit strategy is policy art)’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구전략 3박자 간의 황금률을 지키지 못할 경우 경제를 안정시켜야 할 중앙은행이 오히려 크게 망치는 대실패를 범한다.
출구전략을 언제 추진하느냐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추진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기준이 있으나 전기 대비와 전년 동기 대비로 산출되는 성장률이 2분기 연속 ‘플러스’로 돌아서고, 그 수준이 잠재성장률에 근접할 때를 가장 적기로 꼽는다. 이 경우에도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때이다.
작두칼을 타는 무속인이 주변의 소음으로 실수하면 곧바로 큰 상처를 받는다. 각국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제 때 추진하지 못한 과정애서 잠복돼 왔던 세계 경제 위험이 미·중 간 마찰 등을 계기로 노출되고 있다. 올해 여름 휴가철 직전까지 전후 최장의 호황이라고 평가되던 세계 경제가 갑자기 대수축기가 우려되면서 ‘D’ 공포가 들리는 배경이다.
각국의 보호주의 움직임이 기승을 부리면서 국가 간 협력과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점도 올해를 되돌아보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연초부터 카타르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한데 이어 내년부터 에콰도르가 떠난다. 1960년 9월 출범했던 OPEC가 카타르에 이어 에쿼도르까지 떠나면 13개국으로 축소된다. 국제원유시장과 유가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도 공식 시한인 지난 3월 29일 넘기면서 테레사 메이 총리까지 사임할 정도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후임 보리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에 대한 의지가 워낙 강해 내년에는 11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EU에서 영국이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 등 제2 브렉시트 가능성도 주목된다.

신흥국은 인구 대국인 인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까지 합쳐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새 정부 구성을 위해 잇달아 선거를 치렀다. 지난 4월에 치러진 인도 총선에서 2014년 집권 이후 연평균 성장률 7% 이상의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마힌드라 모디 총리가 압승을 거뒀다. 인도네시아 조코위 위도도 대통령도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 치러진 중남미 선거에서 핑크 타이드, 즉 좌파 물결이 거셌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좌파 후보가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중남미 좌파의 상징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도 석방됐다. 기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좌파 정부,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좌파 정부와 함께 중남미 전역에 핑크 타이드 물결이 얼마나 확산될 것인가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

1994년 이후 21년 만에 재개돼 지난 3년 동안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던 미국과 다른 국가와 따로 노는 ‘대발산(Great Divergence·GD)’이 지난 7월 Fed가 금리를 내린 것을 계기로 축소되고 있다. 국제 간 자금 흐름과 달러 가치, 각국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 움직임은 지난 여름 이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는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하고 양적완화 시한을 연장했다. 지난 10월 말로 임기가 종료된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는 추가 금융완화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도 빼놓지 않았고, 그 후 필요할 때마다 실행에 옮겼다. 신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리는 드라기식 통화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의 달러 정책도 출범 초 약달러 정책은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되지 못함에 따라 2018년 3월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취임 이후 강달러 정책으로 바뀌었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올해 가장 우려했던 ‘제2 루빈 독트린’이라 불리는 ‘커들러 독트린’ 시대가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부담을 느낌에 따라 그 가능성이 낮아졌다. 오히려 약달러 정책을 다시 선호하는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Fed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지 않는다. Fed가 금리를 올려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되면 미국과 신흥국 모두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처럼 슈퍼 달러 시대를 초래했던 대발산을 우려해 금리를 다시 내리고 있고, 앞으로 올린다 하더라도 그 속도를 조절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한국 경제는 ‘경기 논쟁’으로 점철됐던 한 해였다. 출발점은 작년 4월부터다. 당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본격 제기하자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 부총리는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으로 대응했다. 이때 만해도 국민은 반심반의 속에서도 정부의 낙관론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올 들어 경기 상황이 갈수록 악화됐다. 급기야 여름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지난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4%까지 급락한 것을 계기로 ‘디플레이션 논쟁’이 거세졌다. 디플레 논쟁이 무서운 점은 일본 경제의 사례에서 보듯이 장기화될 경우 ‘좀비’ 국면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주무부서인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가 디플레 국면에 빠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통화정책의 시차는 9∼12개월 내외로 추정된다. 재정정책과 달리 ‘선제성’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Fed의 경우 경제지표가 괜찮다하더라도 국민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하거나 시장이 불안하면 금리를 내리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를 중시한다.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으로 우리 국민이 느끼는 경기가 작년부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이란 국민이 경기가 좋아진다는 어조는 ‘+1’, 나빠진다는 어조는 ‘-1’로 빅 데이터 지수를 산출해 체감경기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기법을 말한다.
밤낮없이 경기 살리기에 부심하는 경제 각료의 고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실기(失機)하면 이후에 엄청난 정책비용을 치른다. ‘또 다른 10년’이 시작되는 2020년대를 앞두고 정책당국, 야야 국회의원,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우리 경기 살리기에 나서야 할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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