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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국인의 호소…“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미쳤다”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8-10 09:2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속에 가장 안 좋은 시장지표가 유독 눈에 띤다. 뉴욕의 대형 상업용 빌딩과 고급주택 거래량이 급감하는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통계다. 고가일수록 이 현상이 더 심하다.
거래단위가 큰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절벽이 무서운 것은 앞으로 가격이 본격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예고하는 선행지표이기 때문이다. 교차상관계수, 마코프-스위치 모델, 카오스 이론 등으로 거래량의 가격에 대한 선행을 추정해보면 6∼9개월로 나온다. 한국 부동산 시장의 경우 6개월 내외로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편이다.
대형 상업용 건물과 고급주택의 거래절벽이 나타나는 것은 뉴욕만이 아니다. 런던, 호주, 도쿄, 베를린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작년 이후 시위대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홍콩 비즈니스 지역의 공실률(지난 6월말 기준)은 25%에 이른다. 보안법 시행 이후 상황을 감안하면 30%을 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도시 부동산 시장에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의 유일한 대처가 ‘대봉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상업 중심지일수록 코로나 피해가 집중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화 퇴조로 기업과 함께 자금의 ‘리쇼오링’ 현상도 커다란 요인이다.
궁금한 것은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 경제활동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대형 상업용 건물과 고급주택 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조만간 되찾을 것이다’는 낙관론이 있긴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언택트(비대면),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앞당겨지고 있는 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형 상업용 건물과 고급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세계 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그 속도와 모양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자산 소득이 줄어들면 경기를 둔화시키는 ‘역(逆)자산 효과’ 때문이다. 같은 가격 변화 폭이라도 상승할 때 자산 효과보다 하락할 때 역자산 효과가 더 큰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부동산 가격 변화에 따른 민간소비지출 탄력성은 0.1∼0.15 정도다. 하지만 한국 아파트 가격변화에 따른 민간소비지출 탄력성은 0.23으로 미국보다 2배 가깝게 높게 나온다. 한국 국민의 재테크에서 70% 내외를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가 환금성이 높다는 의미다.

대형 상업용 건물 가격이 회복하지 못할 경우 금융사가 운용하는 각종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에 증거금 부족 현상인 ‘마진 콜’이 발생하면 더 큰 문제다. 마진 콜을 응하기 의해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기존에 투자해 놓았던 부동산까지 처분해야 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 때문이다.
투자자에게도 대형 상업용 건물을 대상으로 한 각종 부동산 금융상품의 환매 중단(혹은 연기)과 금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라임, 옵티머스, 젠투파트너스 등 각종 펀드의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부동산 금융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를 중심으로 ‘혹시 내 돈을 못 받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회 병리적인 면에서는 ‘시카고 공포’도 우려된다. 시카고 공포란 도시발전의 원동력이자 상징이었던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빈 집이 늘어나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면서 시카고가 유령도시로 변한 현상을 의미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3번의 부동산 대책이 숨 가쁘게 나오는 과정에서 빈 집이 200만 가구를 넘어 시카고 공포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시카고 공포는 `외부 불경제`에 해당한다. 외부 불경제란 ‘사적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커 시장에 맡겨두면 효율적인 자원배분에 실패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 부동산 대책처럼 강남 집값을 급하게 잡다 보면 그 후유증 처리도 정부가 개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추가 부동산 대책이 잇따르고 국민의 세금이 더 들어가는 악순환 국면에 빠지게 된다.
Fed를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은 대형 상업용 건물과 고급주택 가격 하락이 가져올 부작용을 감안해 ‘연착륙’시켜는데 주력하고 있는 점이다.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부동산 대책은 경기와 국민생활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선제성‘이 생명”이라 말한 것은 강남 등 집값 잡기에만 몰두하는 우리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대조가 된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무려 23번 나왔다. 행정(내부)와 집행(외부) 시차를 감안하면 아무리 짧아도 정책 주기가 6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많이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다. “내일, 모래면 또 바뀌는데 따라갈 필요가 있느냐”는 국민보다 “또 무슨 정책을 내놓지‘ 고민하는 정책 당국자의 고충이 더 큰 상황이다.
지난 6월 이후 나온 부동산 대책은 ‘가장 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잠실, 대치, 삼성, 청담 등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집을 매매할 때는 해당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책까지 포함돼 있다. 사유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한 대책이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어느 한 외국인은 “한국 부동산 대책이 미쳤다”는 호소가 좀처럼 귓전에서 떠나질 않는다.

모든 경제정책은 정책당국과 국민(시장 포함)이 동참하는 축제가 돼야 한다. 정책당국의 신호에 따라 국민이 반응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초생활인 의식주와 관련된 정책일수록 그렇게 돼야 한다. 부동산 대책은 시장의 생리와 국민의 마음을 읽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경계해야 적(敵)은 특정 목적이나 이념 등과 같은 프레임에서 갇혀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는 경우다. 갈라파고스 함정이란 중남미 에콰도르령(領)인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1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에 빗대 급변하는 환경 변화를 읽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책당국이 특정 프레임에 갇혀 있다면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시장은 불안해지고 국민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외부성’도 급증해 국가의 개입이 늘어난다. 사적비용과 사회적비용 간 괴리를 의미하는 외부성이 나타나면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전제로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적용되는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칙이 무너진다.
외부성으로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경제학의 전제가 흔들리면 ‘가치’가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현실진단 자료로 경제지표의 유용성이 떨어진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런 여건에서 추진되는 경제정책은 ‘프레이밍 효과’, 즉 경제주체와 시장 반응까지 감안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경제지표는 괜찮은데 시장과 국민이 불안해하던 미국과 한국의 경제정책을 비교해 보자.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하는 미국은 금리를 내려 시장과 국민을 안정시켰지만, 프레임에 갇혀있는 한국의 일부 경제 각료와 진보학자는 ‘위기를 조장하는 세력’으로 무시했다. 결과는 한국 경제의 침체 골이 깊어졌다.
오히려 텍스트 마이닝 기법 등을 활용해 경제지표와 경제주체의 반응 간 괴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책당국의 바른 자세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이란 정책당국이 경제정책을 발표한 이후 정책 역행적 성향의 어조는 ‘+1’, 정책 순응적 성향의 어조는 ‘-1’로 빅 데이터 지수를 산출해 시장과 국민 친화적으로 조절해 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요즘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신 경제학(boodoo economics)’의 덫에 걸려 연임에 실패할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미신 경제학이란 미국 남부에서 행해졌던 마교(魔敎)로 정부가 공약과 정책을 내걸지만 효과가 없거나 의도와 다른 효과가 나타날 경우 ‘이는 국민을 상대로 한 기만행위나 마찬가지다’라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한국의 부동산 대책이 23번째 반복되는 과정에서 미신 경제학으로 비춰지는 시각을 주목해야 한다. 부동산 대책이 강남을 비롯해 집값을 잡기보다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거나 오히려 세수를 증대시키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정책당국은 단순히 ‘마교’로 무시하거나 ‘가짜 세력’으로 내몰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시장과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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