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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 전쟁이 촉발한 새로운 질서…10년 호황기 끝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2-02-28 11:15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경제와 글로벌 증시는 종전의 이론과 규범이 더는 통하지 않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태생적 한계로 끝내 바뀌지 않을 것으로 평가됐던 각종 위기론의 양상까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현실의 양대 축은 미시적으로 기업과 거시적으로 한 나라 경기다. 금융위기 이후 개별기업은 유아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를 거치는 ‘S’자형에서 벗어나 특정 시점에 명암이 확실하게 갈리는 ‘K’자형 생장곡선이 정착되고 있다. 한 나라 경기의 진폭 상에 정점이 더 높아지고 저점이 더 떨어지는 ‘순응성’과 주기가 짧아지는 ‘단축화’ 경향이 뚜렷하다.

시계열 자료를 토대로 한 기업분석과 경기예측이 마이클 피시 현상에 시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클 피시 현상이란 전문가의 예측이 실패할 경우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줬던 것을 말한다. PER(주가수익비율) PBR(주당순자산비율) 등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가 잘 들어맞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오히려 디지털 콘택트의 진전으로 외부성이 커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창업자 정신과 혁신성 뿐만 아니라 ESG(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와 같은 뉴 노멀 지속 성장 가능 요건을 갖춰느냐가 유망기업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가평가지표로 PPR(매출액대비 주가비율), PDR(꿈대비 주가비율)이 부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위기 이후 예측력 저하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온 전망기관들도 새로운 예측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기업취약지수(CVI) 기법, 일본은행(BOJ)의 대차대조법(B/S) 방식, 미국 경제 사이클 연구소(ECRI: Economic Cycle Research Institute)의 큐브 방식 등이다. 특히 대표지수 산출과 관련해 ECRI의 큐브 방식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중앙은행 격인 미국 중앙은행(Fed)이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 Fed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인플레와 관련해 마이클 피시 현상에 시달리고 Fed 인사들의 주식투자 문제와 관련해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었긴 했지만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어 기득권을 고집하다가 중앙은행 위상과 신뢰를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첫째,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부터 바뀌고 있다. 1913년 설립 이후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목표인 ‘물가 안정’을 추구해 오다가 2012년부터 ‘고용 목표’를 양대 책무로 설정해 그 이후 통화정책은 후자에 중점을 둬 운용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인플레가 고착화될 움직임을 보이자 다시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둘째, 통화정책 관할대상도 ‘버냉키 독트린’에서 ‘그린스펀 독트린’으로 선회하고 있다. 전자는 실물경제에다 자산시장 여건까지, 후자는 실물경제 여건만 감안해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밴 버냉키와 앨런 그린스펀 전 Fed의 주장이다. 통화정책 우선순위를 물가 안정에 두면 실물경제 여건을 보다 중시해야 달성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셋째, 통화정책 운용방식도 ‘테일러 준칙’과 ‘최적통제준칙(OCR)’보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론자(현대통화론자와 구별)들이 주장했던 ‘통화 준칙’이 선호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책 의지가 반영되는 테일러 준칙이나 경제여건에 따라 금리 경로가 변경되는 최적퉁제준칙은 한계가 있다는 반성에서다.

통화 준칙이란 인플레 타깃선을 현행처럼 2%로 설정하면 물가(Fed의 경우 근원PCE물가상승률)가 이보다 높으면 자동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낮으면 내려 국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중앙은행의 진단과 예측 착오, 자의적 요소 등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의도에서 착안된 방식을 말한다.

넷째, 기준금리도 변경된다. 작년 말로 ‘리보 금리’를 ‘담보부 금리(SOFR)’로 교체한 것에 맞춰 ‘연방기금금리(FFR)’를 ‘익일 환매 금리(on RRP)’로 교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기준금리인 FFR은 시장금리와의 체계가 흐트러져 통화정책 의도를 관철시키는 데 효율성이 오래전부터 떨어져 왔다.

다섯째, 통화지표를 개편하는 움직임도 주목된다. 미국 국민들은 ‘법화’보디 ‘대안화폐’ 사용이 보편화되는 추세다. 물가 안정 목표와 그린스펀 독트린으로 통화정책 관할대상이 되돌아간다면 ‘유동성 지표(L3, L4 등)’보다 ‘통화 지표(M1, M2 등)’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화폐생활과 충돌하는 또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섯째, 차제에 ‘법화’에서 ‘디지털 통화(CBDC)’로 넘어오는 문제도 검토될 수 있다. 이 분야에 앞서가는 중국의 경우 디지털 위안화를 법정화폐로 지정하고 기존 법화와 1대1로 교환하는 ‘리디노미네이션’ 방안까지 확정했다. Fed는 이 문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금지한 가상화폐를 수용하는 ‘스테이블 코인’ 과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일곱째, 통화정책 주 타깃층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더 심해진 ‘K’자형 구조에 따라 중산층이 무너져 BOP(bottom of pyramid), 즉 하위층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BOP 계층을 외면해 통화정책을 추진하다간 경기와 국민 간 디커플링이 심해져 ‘프레임’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Fed는 경제지표가 좋다 하더라도 국민의 체감경기가 안 좋으면 이것까지도 감안해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한다.

여덟 번째, 빅테크 기업과 대형 금융사와 결탁해 양극화가 더 심화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규제와 감독체계를 더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대형기업 저승사자’로 알려진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리나 칸 위원장과 함께 금융규제를 강조하는 레이얼 브레이너드와 새러 블룸 래스킨을 각각 Fed 부의장으로 임명한 것도 이 의도에서다.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환경 의존도가 높아 나라 밖에서 들어오는 뉴 노멀 움직임을 실감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주목된다. 그동안 경기와 관련된 경착륙, 디플레이션 위기가 거론돼 왔다. 전자는 경기순환 상 성장률이 경제주체들이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떨어지는 것인데 반해 후자는 성장률 자체가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플레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됨에 따라 경기와 관련된 위기론도 바뀌고 있다.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플레이션과 성장률 둔화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슬로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성장률과 실업률 간 오쿤 계수가 떨어지고 실업률과 인플레 간 필립스 관계가 우상향으로 전환된 점을 들어 스테그플레이션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부채와 관련해 가계 부문이 항상 거론돼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가 부문, 즉 국채 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현 정부 출범 직전 37%였던 국가채무 비율이 불과 4년 만에 51%로 급증했고 2026년에는 70%에 달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다보고 있다.

가계부채가 많아 신용갭(credit-to-GDP gap)이 1972년 통계작성 이후 최고수준에 달하고 은행의 국채보유비중이 많은 여건에서 국채위기가 발생하면 민간으로 전염돼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부도확률지표인 크레딧 디폴트 스와프(CDS) 프레미엄의 전염도를 따져보면 국채가 1% 오르면 은행은 0.4% 상승하는 것으로 나온다.

대외경제 위상과 관련해 고질적으로 우려돼 왔던 것이 MIT, 즉 중진국 함정이다. 2006년 세계은행(World Bank)가 처음 사용한 MIT는 아르헨티나, 필리핀처럼 신흥국이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선진국 문턱에 와서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다가 신흥국으로 재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를 제외하고는 선진국에 속한다. 앞으로 우려되는 것은 선진국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다. 선진국 함정이 우려되는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정치, 행정규제, 국가부채, 글로벌, 젠더 등 5개 분야의 후진성 때문이다. 우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기법상 요인분석을 통해 최근 뉴 노멀 시대에 위기설의 실체를 규명해 보면 대부분 ‘자신감’과 ‘프로보노 퍼블릭코 정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오히려 뉴욕 증시에서는 외국인 가운데 서학개미의 움직임과 올해 CES 전시회에서 한국 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 경제 10대국’이라는 자부심과 애국심만 있으면 각종 위기설은 상당부문 해소될 수 있다.

‘위기(crisis)’와 ‘위험(risk)’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위기설은 대부분 리스크 성격이 짙다. 초불확실성 증강현실 시대에서는 리스크는 항상 존재한다.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 이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는 경제정책, 기업 차원에서는 경영계힉,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도 재테크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리스크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사전에 파악해 놓은 리스크도 우리가 관리가 가능하느냐에 따라 ‘행태 리스크’와 ‘통제 리스크’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관리 불가능한 행태 리스크마져 내부적으로 감당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설령 비용을 들이더라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 간 외교관계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리스크를 관리할 때에는 ‘사전적 대책’이 중요하다. 주로 사후적 대책에 해당하는 리스크 관리 실패로 위기가 발생하면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전적 리스크 관리대책으로 각광을 받고 ‘텍스트 마이닝 기법’이나 리스크가 위기로 전염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제’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고개드는 위기설(실제로는 리스크)은 실제로 발생할 확률이 적다. 정규분포 상 평균 근처에 발생할 확률이 높은 리스크는 대책을 세워놓기 때문이다. 오히려 양쪽 끝에 어쩌다 한번 발생하는 ‘테일 리스크’는 비용 편익 원칙에 따라 대책을 세워놓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포착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경제주체 간 명암이 갈린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마찬가지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 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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