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시선] 아동 잡지 '어린이'와 소파 방정환

입력 2017-07-20 07:31  

[김은주의 시선] 아동 잡지 '어린이'와 소파 방정환

(서울=연합뉴스)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앵도 같은 어린 입술로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대로 자연의 소리이며, 고대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비둘기와 같이 토끼와 같이 부드러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뛰노는 모양 고대로가 자연의 자태이고 고대로가 하늘의 그림자입니다. 거기에는 어른들과 같은 욕심도 아니하고 욕심스런 계획도 있지 아니합니다. 죄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그것은 우리의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느 때까지든지 이 하늘나라를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사람이 모두, 이 깨끗한 나라에서 살게 되도록 우리의 나라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을 위하는 생각에서 넘쳐 나오는 모든 깨끗한 것을 거두어 모아 내는 것이 이 '어린이'입니다…"

1931년 7월 23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파 방정환이 아동잡지 '어린이' 창간호에 쓴 창간사 '처음에'의 일부이다.





월간 '어린이'는 1923년 3월 20일 자로 세상에 나왔다. 방정환은 앞서 1920년 8월 개벽 제3호에 '어린이 노래'를 번역, 소개하면서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한 의미였다. '어린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어린이' 잡지가 탄생한 후부터였다.

'어린이' 창간호는 별쇄 표지도, 목차도 없이 속장만 B5판(4ㆍ6배판) 12면으로 엮어 푸른 잉크로 찍어 냈다. 창간호에는 간행기록이 없고, 제2호의 판권장에는 발행인 김옥빈, 인쇄인 정기현, 인쇄소 대동인쇄, 발행소 개벽사, 정가 5전으로 표기됐다. 방정환은 편집 실무를 주재하다가 제31호(1925년 9월)부터 발행인이 됐다. '어린이'는 1934년 7월호까지 통권 122호를 펴냈고 이어 1948년 5월호로 복간, 1949년 12월호까지 15호를 더해 총 137호를 발행했다.

동화, 동요, 동극, 일반 교양물을 실었고 어린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글뽑기'도 했다. 주요 필진은 동화에 방정환, 마해송, 동요에 한정동, 방정환, 동요 작곡에 홍난파, 윤극영, 동극에 정인섭, 신고송, 일반 교양물에 차상찬, 이헌구 등이었으며, '글뽑기' 심사 작가로는 윤석중, 이원수, 박목월 등이 참여했다. 동화로 마해송의 '바위나리와 아기별,' '어머니의 선물,' 동요로 이원수의 '고향의 봄,' 윤극영의 '반달,' '까치까치 설날'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수록됐다. 방정환 자신도 '황금거위,' '요술내기,' '더 못난 사람' 같은 '자미잇는 이약이,' '과꼿남매' 같은 '불상한 이약이' 등 동화를 여러 편 실었다.

이 잡지가 재밋거리만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주고 일제를 왜 물리쳐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그 때문에 어린이잡지이면서도 기사삭제, 압수, 발매금지, 편집자 구금 등의 탄압을 받았다. 방정환의 주도로 어린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1928년 10월에는 천도교기념관에서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했다. 전시회에는 20개국 3천여 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방정환이 무리한 활동으로 인한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1931년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이정호, 신형철, 최영주 등이 편집을 맡았고, 1933년부터는 윤석중이 전담했다.

'어린이' 이전에도 '붉은 저고리,' '아이들보이,' '새별' 등 아동잡지가 있었으나 발행 기간과 대중적 호응을 고려할 때 '어린이'를 최초의 본격적인 아동잡지로 보아도 무방하다.






방정환은 짧은 생애 동안 어린이운동가, 민족운동가, 아동문학가, 잡지 편집인, 출판인 등으로 활발하게 일했다. 그는 1899년 11월 9일 서울 야주개(지금 당주동)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3년에 미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상업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퇴하고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서류를 필사하는 사자생 생활을 하며 독학했다. 1917년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결혼하고 이듬해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20년 일본 도요(東洋)대학 철학과에 들어갔으며 그해 6월 개벽이 창간되자 개벽의 도쿄특파원으로 일했다. 1921년 김기전, 이정호 등과 천도교소년회를 조직, 본격적인 소년운동에 들어갔다.

1923년 3월 30일 방정환의 도쿄 하숙집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색동회를 창립했다. 이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제정한 것이 어린이날이다. 그해 5월 1일 서울 시내 소년단체들의 연합조직인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로 첫 어린이날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은 천도교소년회의 창립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데이와 겹치자 1928년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어린이날 행사는 1937년 금지됐다. 어린이날은 해방 후 1946년 5월 5일로 공식 지정됐다.

아동문학가로서 방정환은 외국동화를 번안한 외에도 창작동화를 여러 편 남겼다. '마음의 꽃,' '농부와 굴뚝새' 등의 동화와, '귀뚜라미,' '가을밤' 등의 동요를 발표했다. 1924년 '신여성' 6월호에 실린 수필 '어린이 예찬'은 그의 대표작이다. 단행본으로는 생전에 펴낸 번안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비롯해 사후 간행된 '소파전집,' '소파동화독본,' '방정환아동문학독본,' '칠칠단의 비밀,' '동생을 찾으러,' '소파아동문학전집' 등이 있다. 그는 전국 각지를 돌며 강연, 동화구연 등으로 어린이들을 만났고 잡지 '어린이'를 통해 윤석중, 이원수 등 아동문학가를 발굴했다.







방정환은 '어린이' 외에 영화잡지 '녹성,' 청년잡지 '신청년,' 여성잡지 '신여성,' 종합지 '개벽,' '별건곤,' '혜성,' 학생잡지 '학생' 등 10여 종의 잡지를 창간 또는 관여했다. 이 잡지들을 통해 끊임없이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사회 비평적 글들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것이 '은파리'이다. 의인화된 파리를 통해서 사회 구석구석의 모순된 모습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의 '은파리'는 1921년 1월 개벽 제7호부터 그해 12월 제18호까지 8회에 걸쳐 연재됐다. 개벽이 폐간되자 개벽사가 발행하던 '신여성'과 '별건곤'에 연재를 계속했다. 워낙 이 글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검열 등의 이유로 '은파리'를 게재하지 못할 때마다 독자들의 성화가 대단했다. 싣지 못한 달에는 편집자 글 등을 통해 '독자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실을 정도였다.

방정환은 1908년 9세 나이에 친구들과 토론 연설 모임 소년입지회를 조직했다. 1910년에는 회원 수가 160여 명으로 늘어났다. 1918년 경성청년구락부를 조직하여 계몽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기관지 성격의 잡지 '신청년'을 발간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지하신문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천도교는 그해 9월 2일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를 조직하고 1920년 4월 이를 천도교청년회로 개칭했는데 두 달 후 여기서 개벽사를 설립하여 '개벽'을 발간했다. 방정환도 '개벽'의 기자로 활동했다. 일본 유학 중이던 방정환은 1921년 4월 5일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를 설립을 주도했다. 같은 해 11월 10일 도쿄지회장으로 청년들을 선동하여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방정환은 천도교 청년단체가 각 지역에서 개최한 강연회의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어린이운동은 억압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었다. 방정환은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어린이운동을 벌였다. 어른 중심의 유교질서로부터 어린이를 해방하여 인격과 권리를 찾고 독립국의 시민으로 잘 키우기 위해서였다. 방정환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고 외쳤다. 어둡고 참담한 조국의 현실에서 희망을 제시했다. 미래 세대에 기대하는 마음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어린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방정환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글로벌코리아센터 고문)

ke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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