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강수연과 베니스영화제 수상 30년

입력 2017-09-05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강수연과 베니스영화제 수상 30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의 리도섬에서는 해마다 이맘때 국제영화제가 열려 영화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1932년 무솔리니의 지시로 창설된 베니스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프랑스 칸영화제보다는 14년, 독일 베를린영화제보다는 19년 먼저 시작됐다. 올해도 74회 베니스영화제가 지난달 30일 개막해 21편이 장편 경쟁부문에서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합을 펼치는 등 오는 9일까지 90여 편의 신작이 선보인다.


30년 전인 1987년 9월 9일, 베니스영화제 폐막식이 열린 주상영관 팔라초 델 시네마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씨받이'의 강수연이 호명되자 객석의 영화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이 3대 영화제 부문상에 뽑힌 것은 처음일 뿐 아니라 베니스영화제에서 동양 여배우가 수상 트로피를 차지한 것도 최초였기 때문이다. 강수연은 그 자리에 없었다. 개막식과 경쟁부문 초청작 시사 때도 불참했다. 강수연은 "바쁜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수상 기대를 접은 영화진흥공사가 그에게 영화제 참석을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는 뒷얘기가 돌았다. 그만큼 그의 수상 소식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대 사건이었다.




다섯 살 때인 1971년 TBC(동양방송) TV '똘똘이의 모험'으로 데뷔한 강수연은 학교보다 영화 촬영장이나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예쁘고 깜찍하고 당찬 이미지의 강수연은 촬영장에서 놀다가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금세 눈물을 흘려 성인 배우들의 부러음을 샀다. '별 3형제'(1977년), '비둘기의 합창'(1978년), '슬픔은 이제 그만'(1978년) 등의 영화에서 아역으로 출연하다가 10대 후반 '고래사냥2'(1985년)를 거쳐 1987년 '철수와 미미의 청춘 스케치', '연산군', '감자',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됴화' 등에서 만개한 연기력을 과시했다. '씨받이'도 그해 3월 개봉돼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으나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씨받이'는 양반집의 대를 잇기 위해 대리모로 팔려간 산골 소녀가 겪는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다.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없는 강수연은 출산 장면을 담은 수십 편의 필름을 계속 돌려보고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도 자문한 끝에 생생한 연기를 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강수연은 1989년 당시 4대 영화제의 하나로 불리던 소련 모스크바영화제에서도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차지해 일약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강수연의 잇따른 수상은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감독 임권택을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4살의 나이로 1960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에서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래 지금까지 102편의 영화를 연출한 그는 1981년과 1986년 각각 '만다라'와 '길소뜸'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시켰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강수연의 수상 이후 예술영화 종주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의 칸영화제도 뒤늦게 임 감독을 주목했다. 그러나 당시 임 감독은 작품성보다는 흥행성에 무게를 둔 영화로 방향을 전환해 1990년부터 '장군의 아들' 시리즈를 선보이던 중이어서 한동안 칸영화제와 인연을 맺지 못하다가 2000년 '춘향전'을 경쟁부문에 진출시킨 데 이어 2002년에야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안았다.


우리나라 영화계는 1960년대 아시아 영화의 맹주를 자처하기도 했고 1990년대 들어 충무로 프로듀서들에 의한 기획영화 붐으로 르네상스를 맞았으면서도 3대 영화제의 오랜 수상 기근으로 구미는 물론 일본이나 중국에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일본과 중국은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미야자키 하야오, 천카이거, 장이머우 등의 수상자를 이미 냈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1987년 '씨받이'의 베니스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데 이어 2002년 '취화선'의 칸 수상으로 콤플렉스를 떨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임권택에 이어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등 신진 감독들은 2002년부터 3대 영화제에 단골로 초대받으며 수상 기록을 쌓았다. 15년 전인 2002년 베니스에서는 이창동이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고 여주인공 문소리가 신인배우상을 거머쥐었다. 5년 전 베니스에서는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영화가 3대 영화제 장편 최고상에 뽑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제는 영화 팬들도 예전처럼 3대 영화제 수상 보도에 열광하거나 경쟁부문 진출 실패 소식에 낙담하지 않게 됐다.



30년 전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강수연은 '경마장 가는 길'(1991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년), '지독한 사랑'(1996년),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년), '송어'(1999년), '써클'(2003년) 등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으나 그때만큼 호평이나 갈채를 받지는 못했다. 2011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 이후에는 연기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과 파행을 수습하고자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가 영화계의 반발에 떠밀려 다음 달 22회 영화제를 끝으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임권택도 2014년 '화장' 이후 필모그래피를 쌓지 못하고 있으나 81세의 나이로 보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더욱이 그는 영화제 수상이나 흥행에서 신화를 만들어내 그의 이름을 딴 단과대학(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이나 헌정관(CGV아트하우스 부산 서면)도 생겼다. 우리에게 자긍심을 불어넣고 희망을 안겨주었던 강수연도 은막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충무로의 영원한 전설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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