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가전제품 공매되던 날…30대 실직 가장, 강도 행각

입력 2017-10-27 11:22   수정 2017-10-27 14:09

전재산 가전제품 공매되던 날…30대 실직 가장, 강도 행각

둔기 들고 노인 운영 업소에서 110만원 빼앗아

'구속 불가피'…공황장애·우울증 아내와 6살 딸 살길 막막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공황장애·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와 6살 딸의 생계를 책임진 30대 실직 가장이 가전제품 강제 경매되던 날 둔기를 들고 강도가 됐다.


류모(39)씨는 3개월 전 다니던 택배 회사를 그만뒀다.

관리자와 다툼이 잦았고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온종일 이어지는 격무에 버틸 수가 없어 그만뒀다.

실직 후 일거리를 찾아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다.

날품팔이 일거리를 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텼지만, 2015년에 진 300만원 빚이 류씨를 주저앉혔다.

사정이 급해 빌린 300만원은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못해 2년 새에 500만원으로 불어났다.

빚 독촉을 하던 대부업자는 류씨의 재산에 압류를 걸었다.

그러나 류씨 임대주택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티브이·냉장고 등 생활 물품에는 빨간 압류 딱지가 나붙었다.

월세 16만원짜리 임대주택에 살고 있었으나 집세가 밀려 보증금 160만원을 다 까먹고 오는 11월 23일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던 보금자리마저 떠나야 했다.

지난 25일 오전 압류딱지가 붙은 집안으로 법원 집달관과 대부업자, 경매자들이 류씨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류씨의 가전제품을 모두 공매해 가져갔다.

류씨는 좌절했다. 그리고는 집 안에 있던 장도리를 상의 속에 감추고 집을 나와 걸었다.

광주 서구에서 북구까지 3시간 동안 약 5㎞를 걸어 류씨가 도착한 곳은 한 연로한 노인이 운영하는 화공 약품 취급 업소였다.

이곳은 류씨가 택배 배달일을 하던 중 2주에 한 번꼴로 착불 택배를 배달하기 위해 들리던 곳이었다.

업주가 매번 현금으로 택배비를 지급하던 것을 알고 돈을 빼앗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찾은 것이다.

류씨는 노인의 뒷목을 잡고 장도리를 휘둘러 위협하며 "돈만 내놓으면 다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11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현금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류씨는 한숨을 내쉬는 아내에게 "못 받은 일당을 받아왔다"며 110만원을 건네고 집을 나와 서성였다.

돈 한 푼 없이 밖을 나도는 남편이 딱했는지 류씨 아내는 딸의 손을 잡고 나와 '따뜻한 밥 한 끼 먹자'며 남편을 만났다.

이 모습은 강도사건 신고를 받고 추적에 나선 경찰에 포착됐다.

경찰은 6살 딸 앞에서 류씨를 차마 검거할 수 없어 류씨가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까지 조용히 뒤따라 갔다.

류씨가 딸과 잠시 멀어진 사이 류씨는 범행 하루 만에 붙잡혔다.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에서 곧장 강도 혐의를 인정한 류씨는 고개를 숙이며 범행을 반성했다.

경찰은 "류씨가 압류품 공매를 당한 날 좌절해 강도행각을 벌인 것 같다"며 류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살 곳을 잃을 처지에 놓인 류씨 가족에 대해서는 "피의자 가족을 지원한 사례가 거의 없지만, 류씨 아내와 딸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2013년에 마련된 금융감독원의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임대주택거주자와 기초수급자를 대상으로는 기본 생활에 필요한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압류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류씨는 재개발 예정인 임대주택에 다시 임시로 세 들어 사는 처지라 이 같은 가이드라인의 적용대상이 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pch8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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