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운동.임정 百주년](38) 장제스의 임정 지원, '선의'뿐일까?

입력 2019-03-04 06:00   수정 2019-03-04 10:11

[3ㆍ1운동.임정 百주년](38) 장제스의 임정 지원, '선의'뿐일까?
재정지원 대가로 국민당의 광복군 통제권 수용 강요
'환국' 김구 주석에 "우리 가난해도 한국에 후해야" 거액 전별금…"우정+α"

(서울·타이베이=연합뉴스) 홍덕화 기자·김철문 통신원 =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는 1919년 4월 수립될 때부터 1945년 11월 임정 요인들이 해방된 한반도로 환국(還國)할 때까지 중화민국 국민정부(中華民國 國民政府)와 밀접한 관계였다.
이 관계는 임정 활동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으나, 미국, 소련, 영국 등 다른 전승국들의 의심을 불러일으켜 임정의 국제적 승인이 무산되고 해방 정국에서 임정 출신 인사들이 집중적 견제를 받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장제스(蔣介石·1887∼1975) 국민정부 주석은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 임정 주석이 중국을 떠나 환국할 때 거액의 전별금(餞別金)을 우의의 표시로 주면서 영향력 유지를 꾀하기도 했다.
◇ 국민정부의 지원과 그 대가
임정은 1919년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 처음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 의거를 계기로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이 도시를 떠나야만 했다.
김구 주석 등 임정 요인들은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피신한 뒤 전장(鎭江)→창사(長沙)→광저우(廣州)→류저우(柳州)→치장(<基에서 土 대신 실 사(絲의 반쪽)>江)을 거쳐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해 1945년 8월 광복 때까지 27년간 3천km의 대장정을 벌이며 일제와 숨바꼭질을 벌였다.
임정은 재정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지도자였던 장제스(蔣介石·1887∼1975) 국민당 주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원에는 대가가 따랐다.
1940년 9월 창설된 임정 산하 한국 광복군은 국민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국민정부 군사위원회가 1941년 광복군의 활동을 국민당이 통제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광복군의 9개 행동강령(準繩)'을 따르도록 요구했고 임정은 광복군의 군대 유지와 비용확보를 위해 이 조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
김구 임정 주석은 이청천(1888∼1957) 총사령관이 격노하는 등 광복군과 임정인사들이 국민당 정부를 성토하고 나서자 장제스 주석에게 "우선 한국임시정부를 인정하고 광복군 9개 행동강령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金九函蔣中正請首先承認韓國臨時政府取消光復軍九個行動準繩)을 보냈다.
그러나 국민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임정은 그 해 11월 19일 국무회의에서 광복군 9대 행동강령을 통과시키고 공포했다.

◇ 임정 승인 유보
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일본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 장제스 주석은 대한민국 임정의 조직을 확대토록 한 후 한반도의 공식 정부로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 구상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1944년 7월 15일 쑹쯔원(宋子文) 국민정부 외교부장은 장제스에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임정 승인의 잠정 유보'를 제안했다.
쑹 부장은 임정이 조선 내부 인민을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미국과 영국이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의 독립 인정과 임정 승인은 별개 문제라는 것이었다.
또 1943년 카이로 회담에 참가하지 않았던 소련이 장제스가 주창한 한국의 독립에 관련해 어떤 의사 표시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중국, 영국이 임정을 승인하면 소련의 오해를 받기 쉽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도 이 점을 고려할 것이 분명하므로, 중국이 독단으로 대한민국 임정을 승인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 주석은 쑹 부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임정 승인을 유보했다.
국민당 정부는 임정 임시대통령(1919∼1925)을 지냈던 이승만(李承晩·1875∼1965)이 해방 후에 장 주석을 만나는 것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김구 당시 임정 주석은 1947년 2월 22일 장제스에게 전보를 보내 이승만이 난징을 방문해 조선 독립을 전후한 문제를 상의할 것임을 밝히고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해 많은 지원을 부탁한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 해 4월 2일 구웨이진(顧維鈞) 주미 중국대사는 미국 국무부의 비밀 보고를 인용해 "미국 정부와 주한 군사당국은 이승만에 대해 불만이 많고, 미국내 한국인 대다수가 지지하지 않고, 미 군부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라고 보고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이승만을 융숭히 접대해 미국과 소련의 의심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장 주석에게 내놓았다.
연합뉴스가 대만 국사관에서 입수한 1947년 4월 9일자 문서(제목 「兪濟時呈蔣中正彙報顧維鈞等呈供鈞座召見李承晩時參考資料」)에 따르면 위지스(兪濟時) 국민당 군사위원장은 1947년 4월 9일 장제스에게 "구웨이쥔 주미대사 등이 이승만을 만날 때 참고할 자료를 수집했다"며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
◇장제스가 김구에게 준 전별금 20만달러
김구 주석은 1945년 11월 중국 충칭을 떠나 조선으로 환국할 때 장제스 주석으로부터 전별금 2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280만 달러·30억원)를 받았다.

샤오위린 중화민국 대사 회고록(使韓回憶錄·주한대사 시절을 돌아보며)에 따르면 장 주석은 김 주석이 임정 소재지인 충칭을 떠나 귀국하게 되자 1945년 11월 1일 송별연을 열어 임정 요인들을 환송하면서 우톄청(吳鐵城) 국민당 비서장(사무총장)에게 전별금을 주도록 지시했다.
장 주석은 "비록 우리 정부가 가난하긴 하지만 어찌 한국에 후하지 않을 수 있으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샤오 대사는 1949년 7월 주한 중화민국 대사로 부임해 한국 전쟁 기간인 1951년 9월까지 2년여간 재직한 뒤 귀임했다. 그는 중국인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임정 고문'으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그는 난징 소재 국민당 정부가 임정에 20여년간 재정지원을 했음을 상기시킨 뒤 "그동안 100만달러 또는 1천만달러까지도 주었던 것에 비교하면 20만 달러는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전후(2차대전 후) 한국 정치의 혼란 상황 속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필요한 돈이다"라고 강조했다.
국민당 역시 당시 항일 운동과 공산당과의 내전 등을 치르느라 재정적으로 어려웠지만, 장 주석은 김 주석이 돈 문제로 고생하지 않게 자금을 주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구 주석은 귀국시 이 돈을 직접 가져가지 못했다. 국민당 정부는 이를 국고에 보관했다가 1947년 6월 한국에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장 주석이 김 주석에게 준 전별금의 의미를 ▲우정 ▲공동운명체 ▲해양세력과의 완충지대 활용 등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3·1운동기념사업회장인 이정은 박사는 "전별금을 가까운 친구 사이에 주고받는 것으로만 본다면 다분히 감상적인 판단"이라며 "강대국들의 속성 등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다차원적으로 분석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거액의 전별금 제공을 중국이 2차 대전 후 한국을 자신의 영향 아래에 두려고 애쓴 결과로 설명했다.
그는 중국 국민정부가 일본 패망 후에도 대일본 대결 구도에서 한국을 완충지대로 활용하고 싶어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에 들어설 정권이 정치적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일본에 접근하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큰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했던 듯 하다.

반면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전별금 제공에 대해 임정 측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서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임정이 중국에서 27년간 활동하면서 중국 국민정부에 보낸 서한 중 3분의 2 이상이 광복군 창설 비용 지원 등 돈을 달라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duckhwa@yna.co.kr, jinbi10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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