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실향민 신덕재 치과원장 "탈북민 직업교육 강화해야"

입력 2019-06-25 09:10  

[인터뷰] 실향민 신덕재 치과원장 "탈북민 직업교육 강화해야"
5살 때 아버지와 생이별…"죽기 전에 북한 고향 꼭 가고 싶다"
수십 년째 탈북민 무료 진료·봉사활동 앞장…'대통령상' 수상


(서울=연합뉴스) 김종량 기자 = "남북은 물론 북미관계가 하루빨리 개선돼 남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했으면 좋겠습니다. 반세기가 넘게 남북이 분단돼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남북관계가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6.25 전쟁 때 아버지와 헤어진 후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남한에 온 신덕재(72) 서울 중앙치과 원장은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4개월 가까이 소원해진 남북 및 북미관계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황해도 옹진 앞바다에서 헤어질 때 곧바로 뒤따라 오겠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이렇게 남과 북으로 분단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5살 때 헤어졌으니까 반세기가 훌쩍 넘었어요. 그때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못지않게 남한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전쟁 후 모든 것이 파괴됐고 입고 먹을 것도 부족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역할을 해야 했으며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그야말로 죽도록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서울대 치과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학생처럼 대학 생활의 낭만을 누릴 형편이 아니었다. 북한에 있는 아버지 생각이 항상 가슴속 깊은 곳에 돌덩이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혹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북한에서 왔다고 말도 못 할 때였습니다. 맘고생도 정말 많이 했어요.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들을 보면 북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혼자 눈물도 많이 흘렸죠. 그래서 아버지 같은 아저씨들을 돕기로 했어요. 그렇게라도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인 1974년 서울대와 연세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뜻을 같이하는 서울지역 의대생과 간호학과 학생 중심으로 연합의료봉사단체 '푸른얼'을 만들었다. 이후 20년 넘게 농어촌과 노숙자, 이주노동자, 탈북민 등을 찾아가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했다.
1999년 11월에는 IMF로 국내 경제가 좋지 않아 많은 회사가 도산하고 노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개업한 치과의사 중심으로 '열린치과봉사회'를 조직했다. 초대 회장을 10년 가까이 맡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봉사 범위를 넓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도 찾고 있다.


탈북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유를 묻자 그는 "실향민으로서 북한에서 온 고향 사람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북한 실상을 보고 북한 주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평양 방문 이듬해인 2003년 하나원 의료봉사활동에 나서게 됐고 이를 계기로 탈북민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최근에는 탈북민 보철사업비 명목으로 1억원을 남북하나재단에 기부했다. 또 앞서 몇 년 전에는 열린치과봉사회의 장학사업을 위해 1억원을, 해외 진료사업비로 1억원을 각각 전달하는 등 기부 활동에도 앞장섰다.
"처음에는 기부 사실을 집에 알리지 않았어요. 나중에 가족들이 알았는데도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저의 (실향민이라는) 상황을 많이 이해해 주는 편입니다. 지금은 응원을 많이 해 줘요."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2018 북한이탈주민 지원 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는 의료봉사뿐 아니라 문학에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다.
작년 12월 '2018 PEN 문학상 시상식'에서 소설집 '바보 죽음'으로 소설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또 같은 달 17일 열린 '제26회 순수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지난 45년간의 봉사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집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으로 수필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한다.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져 죽기 전에 북한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아마 지금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겠지만 그래도 그 흔적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생전에는 실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밋빛 통일 기대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핵을 포기하는 순간 정권이 무너질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북한 정권을 이끄는 당 고위간부들은 잘 먹고 잘사는데 그 기득권을 포기하고 남한에 예속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비록 중국식 개혁개방이나 베트남식 개방을 할지언정 그들이 정권을 포기하고 한국과 통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탈북민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탈북민도 정부 지원금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기술을 배워 한국에 정착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일부 탈북민은 정착 지원금을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는데 사용하는 바람에 정작 자신들이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정부에도 한마디 했다.
"탈북민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줘야 한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사람들이다. 탈북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 있어야 한다. 일시적인 금전적 지원보다 미용이나 간호조무사, 용접 등 직업교육을 강화해 안정된 직장을 갖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j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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