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아베, 검사 정년 틀어쥐고 '길들이기' 시도하나

입력 2020-05-16 07:07  

[특파원 시선] 아베, 검사 정년 틀어쥐고 '길들이기' 시도하나
검사 정년연장 법안 강행 태세…정권 인정 못 받으면 '강등' 논란
비위 의혹 쌓인 아베 정권, 인사 활용한 사실상의 수사개입 우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
트윗·리트윗이 900만건을 넘으면서 지난 일주일간 일본 열도를 달군 메시지다.
일본 중·참의원의 과반을 장악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조만간 표결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여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거센 반대에도 아베 정권은 법 개정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는 인사를 매개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사학 재단 비리, 일본 정부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을 둘러싼 의혹, 각종 공문서 폐기 논란 등으로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아베 총리로서는 검찰청법 개정이 숙제인 것으로 보인다.


◇ "검사 정년 늘려 주겠다…강등 싫으면 정부 인정받아라"
언뜻 보면 검찰청법 개정안은 고령 사회에 맞춰 검사의 정년을 연장하는 구상 같다.
일본 정부는 사회 변화에 맞춰 고령자의 지식이나 경험을 활용하도록 공무원의 정년 연장을 추진하면서 검사의 정년도 연장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 살펴보면 독소 조항이 있다.
논란은 아베 정권이 검사의 정년을 조건부로 연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다.
검찰청법 개정안에는 한국으로 치면 검찰총장 격인 '검사총장' 이외의 모든 검찰관(검사에 해당)의 정년을 63세에서 65세로 늘리되 차장검사나 검사장 등 고위직은 63세가 되면 보직에서 물러나 일반검사가 되도록 직책 정년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행 검찰청법은 검사총장의 정년을 65세, 그 외 검사의 정년을 63세로 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검사총장 외 나머지 검사들이 평검사로 2년 더 근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공무의 운영에 현저한 지장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내각(지검장은 법무부 장관)이 인정하는 경우 최대 3년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둔 것이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으면 검사장은 최장 68세까지, 차장검사나 검사장은 66세까지 보직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일본의 정치 현실을 고려하면 검찰 고위직은 아베 정권(혹은 집권 자민당)의 인정을 받아야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정권이 인정하지 않으면 고위직에서 일반 검사로 사실상 강등당한 상태로 정년퇴직 전 2년 동안 근무하게 된다.

◇ 아베 "검사 임명권은 애초 정부에…자의적 인사 없다"
아베 총리는 1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은 고령기 직원의 풍부한 지식이나 경험 등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일반직 국가공무원의 정년을 끌어올리는 것 등과 맞춰 검찰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청법 개정안이 삼권 분립을 해치거나 자의적 인사를 하는 수단이 된다는 우려에 관해 "애초에 검찰관은 행정관이다. (중략) 이른바 강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나 행정관인 것은 틀림없다"고 반응했다.
아베 총리는 정부가 인정하면 최장 3년간 보직을 유지한 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종래부터 내각 또는 법상(법무부 장관에 해당)이 (임명)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자의적인 인사가 벌어지는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은 단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검사의 직무가 특수하지만, 행정부의 일원이고, 애초에 검사 임명권은 내각에 있으며, 경험이 풍부한 검사의 식견을 살릴 수 있도록 정년을 늘려주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본에서 검사의 정년을 보장한 역사나 전문가의 의견을 살펴보면 단순히 행정관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본 검찰청법은 1947년 제정 때부터 검사총장의 정년을 65세, 그 외 검사의 정년을 63세로 정하고 있었다.
국가공무원법도 1947년에 제정됐으나 당시에는 정년 제도가 없었고 1981년 법 개정이므로 정년이 비소로 도입됐다.
전문가들은 정치인 등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해 재판에 넘겨야 하는 검사 직무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한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도쿄지검 특수부 재직시절 '리쿠르트 뇌물 사건'을 담당한 다카이 야스유키(高井康行) 변호사는 "정치(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관을 자의적으로 파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마음에 든 검찰관의 정년을 특별히 연장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정년제가 외압에 굴하지 않고 공정한 수사를 하게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해석했다.
미즈시마 아사호(水島朝穗) 와세다(早稻田)대 법학부 교수는 검사가 강한 수사권과 더불어 공소권을 지닌 유일한 존재이므로 "그런 강대한 존재가 직에 계속 눌러앉지 않도록 정년을 둬서 자동으로 퇴직하도록 한 것"이라고 검사에 대해서만 일찍부터 정년을 둔 이유를 풀이했다.


◇ 일본 검찰 vs 정치권력 갈등…아베 외조부 친동생 체포 저지도
일본 법조계 인사들은 1954년 '조센기고쿠'(造船疑獄) 사건 수사 당시 발생한 법상의 수사 지휘가 검찰과 정치 권력의 갈등이 표출된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조센기코쿠 사건은 일본 정부가 선박 건조를 지원하는 이른바 '계획 조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운·조선업계가 당시 운수성 고관과 여당인 자유당(자민당의 전신) 간부에게 뇌물을 줬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당시 일본 검찰은 자유당 유력 인사를 차례로 체포하고 간사장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1975)의 체포영장 청구까지 결정했으나 이누카이 다케루(犬養健) 당시 법상이 검찰청법 14조에 따라 검사총장을 지휘해 체포를 저지했다.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전 총리의 친동생으로 나중에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이 사건은 권력에 의한 수사 개입으로 여겨져 여론의 반발을 샀고 이누카이는 결국 사임했다.
이후 일본에서 법상이 명시적인 지휘권을 발동했다고 '공인'된 사례는 없다.


미즈시마 교수는 "정년이 임박해 본래는 취임할 수 없는 (검찰) 수뇌 자리라도 그때의 정권이 정년을 인정하는 경우 취임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검사가 정권을 전혀 눈치 보지 않고 정권의 의혹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상시적인 지휘권 발동 상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군수업체의 로비 의혹으로 도쿄지검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1918∼1993) 전 총리를 체포한 이른바 '록히드 사건' 수사를 담당한 홋타 쓰토무(堀田力) 전 법무성 관방장은 "내 경험에서 말하면 정치가가 그 권력을 배경으로 수사에 압력을 가해 온 일이 자주 있다. 그래도 꿋꿋하게 진상을 해명하려고 하는 기개 있는 상사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조직의 수장인 총장이나 검사장에게는 정치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할 수 있는 담력이 요구되고 그 인사가 정치가의 판단에 걸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검찰청법 개정안의 정년 연장 관련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아사히(朝日)신문에 의견을 밝혔다.


◇ 논란에도 강행 태세…'정치통 검사장' 정년 연장이 시발점
아베 정권은 왜 여론 반발을 무릅쓰면서 검찰청법 개정을 강행하려 할까.
직접 시발점이 된 사건은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의 정년 연장이다.
아베 내각은 올해 1월 31일 각의에서 구로카와 검사장의 복무 기간을 올해 8월 7일까지 6개월 연장했다.
검사의 정년을 63세로 정한 검찰청법에 따라 구로카와 검사장의 퇴직을 불과 1주일 남겨둔 시점에 검사의 정년을 연장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검찰청 업무 수행상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로카와가 보기 드물게 정치권과 가까운 검사인 것이 알려지면서 이나다 노부오(稻田伸夫) 검사총장이 올해 8월에 취임 2년을 채우고 관례대로 퇴임하면 구로카와 검사장이 차기 총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했다.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구로카와는 1983년 검사로 임명된 후 37년에 달하는 공직 생활 중 약 19년 동안 일선 수사 현장을 떠나 정치인과의 접점이 많은 법무성에서 근무했다.

그는 출세 코스로 여겨지는 형사국 과장이나 비서과장 등을 지냈고 민주당 정권 시절을 포함해 7년 넘게 법무성 관방장이나 사무차관 자리를 지켰다.
구로카와는 이 기간 공모죄 신설 및 출입국관리법개정 등 아베 정권이 중시하는 입법에 관여했다.
그가 관방장·사무차관을 하는 동안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의혹을 산 오부치 유코(小淵優子) 전 경제산업상을 비롯해 아베 정권에 몸담은 이들의 금전 비위 의혹이 이어졌지만, 정치인 본인이 기소되는 일은 없었다.
모리토모(森友)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된 재무성 공문서 조작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재무성 간부가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구로카와 씨가 사건을 뭉개버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지만, 복수의 검찰 간부는 "(구로카와가) 사건에 참견한 적이 없으며, 원래 결재 라인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전례 없는 정년 연장의 파문은 의외로 컸으며 국회에서 야당의 추궁이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애초에는 정년 연장이 국가공무원법 규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1981년 국가공무원법 개정 당시 '검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일본 정부가 국회에 답변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베 총리는 법률 해석을 변경해서 적용했다고 해명했으나 고무줄 잣대로 법치주의를 우롱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아베 정권은 논란에 부채질을 하듯 올해 3월 13일 국가공무원과 검사의 정년을 연장하는 법안을 묶어 각의에서 결정하고 같은 날 중의원에 제출했다.
아베 정권은 내주쯤 중의원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칠 것으로 예상된다.


◇ 다가오는 아베 임기 만료…장기 집권 중 의혹 눈덩이
여론의 반발을 고려하면 검찰청법 개정은 아베 정권에 정치적으로 상당한 마이너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앞서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안보법제 개편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이기를 한다는 비판을 누차 받았고 검찰청법 개정안까지 강행 처리하면 여론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가 물러설 뜻을 보이지 않는 배경이 주목된다.
우선 최근 일본 검찰의 아베 정권을 향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도쿄지검은 특수부는 자민당 소속이던(체포된 후 탈당) 아키모토 쓰카사(秋元司) 중의원 의원이 복합리조트(IR) 정책과 관련해 중국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아키모토는 내각부와 국토교통성 부대신(차관)을 지내며 IR 정책을 담당하는 등 아베 정권의 핵심 정책을 주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현직 국회의원을 10년 만에 체포한 사건이라서 관심을 모았다.

작년에 아베 정권이 전폭적으로 후원해 당선시킨 가와이 안리(河井案里) 참의원 의원은 선거 때 유권자를 매수한 혐의에 연루됐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특보 출신인 남편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전 법상이 매수 행위에 직접 관여했다는 진술이 이미 관계자들에게서 나오는 상황이다.
검찰은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상을 입건하기로 방침을 굳혔으며 가와이 안리 의원도 입건할지 검토 중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측근이 연루된 비리에 대한 수사 및 재판 결과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구심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검찰의 움직임 보이지는 않지만 아베 총리 본인과 관련된 문제도 있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후원회 관계자 등을 벚꽃을 보는 모임에 대거 초청했다는 의혹이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정계를 달궜다.
참의원 선거나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세금으로 투표권자를 사실상 접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많았다.

야당이 진상 규명을 시도하는 가운데 내각부 등에 보관 중이던 초청대상자 명부 등이 대거 폐기됐고 공문서 무단 파기 논란으로 이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벚꽃 의혹에 대한 추궁이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의혹은 풀리지 않은 상태다.
학원 비리의 불씨도 남아 있다.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매입 관련 문서 조작 의혹으로 자살한 재무성 긴키(近畿)재무국 직원 아카기 도시오(赤木俊夫) 씨가 '상사의 지시를 받고 문서를 고쳤다'는 수기를 남긴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유족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모리토모 학원이 신설을 추진한 초등학교 명예 교장에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취임하는 등 권력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사건인 만큼 아베 총리로서는 뒷맛이 개운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골프 친구가 이사장인 가케(加計)학원이 일본에서 52년 만에 수의학부 신설을 인정받는 과정에서 부당한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샀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가 물러나야 할 시기는 다가온다.
역대 최장기 집권 중인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에 종료한다.
의원 내각제인 일본에서 집권당 총재가 되는 것은 총리가 되기 위한 사실상의 필요조건이다.
국회 해산 등으로 정국을 반전시키거나 자민당 당칙을 또 개정해 총재 임기를 연장하지 않는 이상 아베 총리 시대 대단원의 막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검찰청법 개정을 강행하려하자 찝찝한 여러 사안에 관한 향후 수사 가능성까지 고려해 미리 정권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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