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 선일이비즈니스고 김윤진 교사 “특성화고에는 계획이 다 있구나!”

입력 2020-03-30 17:07  







선일이비즈니스고 김윤진 교사 




“특성화고에는 계획이 다 있구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를 꼽으라면 위 두 문장을 선택하고 싶다. 왜냐하면 필자 인생의 상당 부분을 무계획적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무계획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국어교육을 전공한 것도 특성화고의 교사가 된 것도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필자는 본래 계획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고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는다.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며 심지어 그 변화를 타인에게 요구하기까지 한다. 무(無)계획과 무(無)열정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는 나와 영화 <기생충>의 ‘기택’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계획적인 이들은 피곤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대학 진학에 몰두했던 과거 특성화고

필자는 원래 사소한 일에도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지만 특성화고에 온 뒤 더욱 심해졌다. 일반고에서 근무할 땐 목표가 아주 단순했다. 어떻게 하면 국어 수능 문제를 잘 풀게 할 수 있을까. 오직 그것만 생각했고 학생들의 진로나 꿈 따위는 별 관심 없었다.

2009년 8월. 어쩌다보니, 어쩔 수 없이, 계획에 없던, 특성화고에 오게 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취업하는 학생들이 문학 수업을 들을 리가 없다는 걱정을 했지만 의외로 수업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다수가 취업이 아닌 수능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특성화고 졸업자 전형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 입시 제도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제도가 합리적인 것 같진 않지만 특성화고 졸업자 전형 이거 특성화고 애들에게는 참 꿀이네. 일반고처럼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아도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을 갈 수 있다니!’ 이런 생각을 하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중학생들에게 특성화고 졸업자 전형의 전도사가 돼 있었다.

어느 날 교무실에 걸린 슬로건 ‘취업전국제패-70% 달성’

그런데 상고를 나온 대통령이 특성화고 학생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나고 공기업, 대기업에 취업시켜 준다는 얘기가 매스컴에 나오더니 갑자기 취업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는 처음 겪는 것 같았다. 필자가 고1때 학교에서 본고사가 중요하다고 해서 거기에 올인하다가 고2때 본교사가 없어졌 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그 당혹감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진로지도의 방향 자체가 달라진 것이어서 학생들도 당황스러웠지만 교사들 간에도 ‘취업을 해야 한다’ 혹은 ‘진학을 해야 한다’며 의견이 서로 갈렸다.

내가 근무하는 선일이비즈니스고는 변화에 아주 민감한 학교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그 변화의 가장 앞자리에 있길 바랐다. ‘취업전국제 패-70% 달성’이라는 무시무시한 슬로건이 학교 교무실에 걸렸다. 일순간 학교의 시스템은 취업 중심으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그 말도 안 되는 목표가 현실이 되었다.

목표가 바뀌니 수업도 달라졌다. 수능 문제를 풀어주던 나는 이제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그리고 직업기초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연구수업도 하고 연구대회도 나가야 했다. 그 해 연구대회에서 운 좋게 상을 받았고 세미나에서 직업기초능력 향상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심지어는 연수 강사로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특성화고 졸업자 전형에서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의 전도사가 돼 있었다.

변화의 파도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특성화고

그 이후에도 특성화고에는 무수한 변화가 있었다. 창업교육이 강조되기도 하고 국제화사업이 생겨나기도 하고 현장실습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NCS 교육과정 이라는 파도에 휩쓸려야 했고 앞으로 고교학점제라 는 파도도 특성화고가 가장 먼저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지금의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다. 근데 이 변화는 정말 ‘역대급’인 것 같다. 이 변화는 정책, 제도의 차원을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일 텐데 그게 아직 무엇 인지 모르겠다.

이런 잦은 변화는 무계획과 무열정이라는 신념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계획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독박 육아를 하는 아내는 늦게 퇴근하는 나를 보며 “지금 당신이 삼성에 다니는 거냐?”라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아마 가족, 친구들로부터 이 말을 듣고 있거나 들을 만한 특성화고 교사가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련의 시기 지나고 직업교육의 미래는 밝아질 것

올해 우리학교에 새롭게 주어진 미션은 4차 산업혁명 분야로의 학과 개편이다. 이 어려운 과제를 던져 준분은 선일이비즈니스고의 안재민 교장이다. 그는 5년 전부터 국제화를 외치더니 싱가포르 현장실습에 성공했고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1000달러 수출도 달성 했다. 또한 취업률 90%를 달성하기 위해 학급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취업마인드제고 특강을 하고 학생 들이 발명특허 경진대회에 출전할 땐 직접 피드백을 해주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난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계획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은 특성화고가 현재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른들의 가치관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혁신의 가장 강력한 자극이자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감히 직업교육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예측을 해본다.

특성화고에는 다 계획이 있고, 특성화고 학생들도 다 계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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