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닥치고' 공약?…그러다 나라 '곳간' 텅 비면?

입력 2013-01-25 10:01  


공약은 정치인과 유권자 간의 매개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직 후보자는 공약을 개발해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유권자들은 쏟아지는 공약들을 평가해 후보자를 선택한다. 물론 후보 선택은 공약 외에 리더십, 이념, 성품, 개인적 선호도 등이 어우러져 결정된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공약은 매우 중요하지만 어느 것이 참된 공약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공익과 사익에서 공약은 때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일단 공약을 내놓고 보자는 후보자들도 많다. ‘당선 만능주의’가 우리나라의 정치풍토만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수준에 비춰볼 때 공약이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다. 합리적 공약을 제시하고, 가능한 한 공약이 지켜지는 풍토가 조성돼야 정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 이기심이 낳은 중우(衆愚)정치

고대 민주주의 발원지는 아테네다. 하지만 교과서에도 자주 언급되는 아테네 민주정치는 중우정치로 몰락했다. 중우정치는 다수의 어리석은 대중이 이끄는 정치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이런 민주주의 타락에 실망해 ‘국가론’에서 현명한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산정치’를 주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대중 민주주의 위기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대중에 영합하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정치인들은 ‘당선 만능주의’에 빠져 무리하게 공약을 남발하지만 유권자들은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약하거나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공약을 판단해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 극성을 부리는 토양이 돼간다는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보듯 과다한 복지는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지만 여전히 ‘공짜의 유혹’이 표심을 흔드는 것이 현실이다.

# 포기된 무리한 공약들

대선 때마다 무리한 공약이 남발된 것은 어느 선거 때나 비슷하다. 또 무리한 공약이 정권에 부담을 준 사례도 적지 않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금융채무에 관한 파격적 공약을 내놓았다. 신용등급 7~10등급에 해당하는 720만명의 채무를 재조정하고 기존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연체기록을 모두 말소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른바 ‘720만명 신용대사면’ 공약은 서민의 표심을 어느 정도 흔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 금융질서 파괴, 재정부담 등의 우려가 커지면서 결국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7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신용회복기금을 통해 연체액이 3000만원 이하인 신용불량자 72만명의 이자를 감면해 주는 방식으로 대폭 축소됐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쪼그라들었다.

김영삼 대통령 정부의 쌀수입 반대나 농어민 연금제 도입,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 농가부채 모두 탕감, 내각제 개헌,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동북아 실크로드, 성장률 7% 달성 등도 역대 정권에서 포기하거나 거의 지켜지지 못한 대표적 공약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 수입을 막겠다”고 했지만 불과 취임 10개월 만에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이 타결되면서 사과담화까지 발표했다.

#'空約'은 반드시 비난받아야?

공약의 실천엔 돈(재정)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의 재원은 세금이 바탕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따라서 공약의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재정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사실상 공약 이행이 불가능하다. 공약 실천만을 위해 무분별하게 세금을 올리고 돈을 찍어내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올바른 리더십이 아니다.

남미 경제의 발목을 잡은 포퓰리즘이 자주 도마에 오르는 것은 지나치게 인기영합주의적 공약을 남발하고 이런 공약이 경제에 부담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후보자에서 지도자로 바뀌어 국가의 재정사정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본 후 곳간이 비었다고 판단되면 공약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일부는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철학자 칼 포퍼는 “민주주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선거를 통해 정부를 갈아치울 수 있는 체제”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다수결 의사결정이 갖고 있는 결함도 있다. ‘투표의 역설(콩도르세의 역설)’이나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는 민주주의가 전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론들이다. 정치인은 합리적이고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공약을 개발하고, 유권자들은 공약의 진정성 여부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의식을 갖춰야 민주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중우(衆愚)정치나 중산정치는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공부해보자. 재정이 부족할 경우 공약은 어떤 논리에 따라 재조정돼야 하는지를 논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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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적정성 여부 따져보는 '매니페스토'

공약검증 운동 중 대표적인 것이 매니페스토 운동과 스마트 운동, 포퓰리즘 검증운동이다. 매니페스토는 후보의 공약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어원은 ‘증거’ 또는 ‘증거물’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마니페스투(manifestus)이다. 이 말이 이탈리아에 들어가 마니페스토(manifesto)가 됐고, ‘과거 행적을 설명하고,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같은 의미로 17세기 영어권 국가에 소개됐다.

언론에 가끔 나오는 스마트(SMART),셀프(SELF),파인(FINE) 등 세 가지 평가지표가 매니페스토에 쓰인다. 운동단체들은 공약의 구체성(specific),측정 가능성(measurable),달성 가능성(achievable),적절성(relevant),시간적 가능성(timed) 등 스마트를 근거로 0~5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공개된 지표는 후보자들의 능력과 공약의 진실성을 대변한다. 셀프 지수는 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지속가능(sustainability)한가,자치역량 강화(empowerment)에 도움이 되는가,지역성(locality)을 반영하는가,이행(follow up) 가능한가의 4개 항목별 100점 만점으로 구성된다. 파인은 공약의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살펴보고 유권자의 반응(intera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을 잣대로 사용한다. 이 같은 평가를 통해 선거에 승리한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공약 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행 정도에 따라 다음 선거에도 영향을 끼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에서는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계기로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구체성을 띠고 있는지, 실현 가능한지를 평가하자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운동은 특정 정파와 노선을 벗어나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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