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버는 풍수] 기발한 영감이 떠오르는 계곡

입력 2013-02-24 10:20  

조선의 선비들은 자연을 즐기는 풍류의 일환으로 또는 자기의 뜻을 펼 수 없는 답답함을 풀 요량으로 벗들을 경치 좋은 곳으로 불러 시회(詩會)를 열었다. 시회는 누가 시를 빨리 잘 짓는가를 견주는 시짓기 내기다. 당대의 사대부라면 누구나 사서삼경은 읽었을 터.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어진 마음을 지킨다’는 정신으로 봄날이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자를 찾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가를 찾아 술동이를 내려놓고는 마시고 웃으며 시를 지었다.

그런데 한시를 지을 때면 운자로 정해진 글자만은 꼭 시 구절 안에 넣어 지어야 하는 법칙이 있다. 예를 들어 소동파의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산에 사람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란 구절을 땄다면 각각의 글자를 운자로 삼아 시를 지어야 한다. 쉬울 것 같지만 시상이 풍부하지 못하거나 한문 실력이 떨어지면 음률을 맞춰야 하는 작시(作詩)가 여간 거북하고 진땀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의 제약은 무섭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은 수로를 굴곡지게 하고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운 뒤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 시를 한 수 읊는 놀이다. 이것은 글 모임을 최고로 안 문인들이 피서와 위락을 겸한 풍류였으나 실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체면을 생명보다 중히 여기던 꼬장꼬장한 사대부들이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석 잔의 술을 연거푸 원샷으로 마셔야 했다. 두주불사하는 선비라면 오히려 벌주를 탐했겠지만 명문가의 자제로 가문의 체통을 생각하면 그 이상 부끄럽고 망신스러운 일은 없을 성싶다. 누구 누구가 인재인 줄 알았는데 어느 시회에서 벌주를 연거푸 마시고 대취해 대낮에 드러누웠다고 하면 욕 중에 쌍욕이고 가문에 먹칠을 한 것처럼 부끄럽게 여겼다.

절박하게 시상을 떠올리며 시회를 자주 열던 장소는 영감이 번쩍하고 떠오르는 생각 명당임이 틀림없다. 조선 후기의 중인들은 나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조 이래 새 문화를 풍성히 살찌웠고, 문학 미술 음악 의학 천문 외교 금융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이 즐겨 시회를 열던 명소가 서울 인왕산 아래 첫 계곡인 수성동이다. 정선의 그림 수성동을 보면 큰 바위 사이로 개울물이 급히 흐르고 세 명의 선비가 동자 한 명을 데리고 서 있다. 지극히 한가로운 옛 풍광이다.

서울시는 2010년 조망을 해치는 아파트를 철거한 뒤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통돌 다리를 포함해 자연이 아름답고 옛 풍경이 그대로 유지된 수성동 계곡을 서울시 기념물(제31호)로 지정했고, 현재는 그림에 등장한 지형과 경관이 옛 모습대로 복원됐다.

끊임없이 생각의 힘을 키워야 하는 사람들. 머리가 녹슬어 사람을 열광케 하는 영감의 능력이 오그라졌다면 운좋게 영감이 떠올랐다 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만한 여유가 없다면 수성동 계곡을 찾는 것도 좋다. 김정희가 ‘낮임에도 밤처럼 느껴진다’고 노래한 곳에서 산천의 기운도 마셔보고 옛 선비의 시작 혼도 느껴보자. 그곳에는 절벽에 부딪힌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할 기발한 영감이 깊은 골짜기 구석구석 그윽하게 서려 있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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