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테한 세계여행 (12) 벨리즈] 느리게 사는 법을 알게 되다 “Go Slow!”

입력 2013-03-13 09:27   수정 2013-03-22 12:01


[글 정민아 / 사진 오재철] 장기 여행을 하다 보니 한 여행지에서 만났던 여행자를 다음 여행지에서 다시 만나는 건 예삿일이다. 예를 들어 서울 남산타워에서 만났던 여행자를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다시 만났을 때, 처음엔 우리가 인연(?)인 것 같다며 펄쩍펄쩍 뛰고 박수치며 반가워했지만, 한정된 시간 동안 커다란 나라 하나를 다 보려면 가이드북에 나온 유명 관광지를 열심히 좇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 일듯도 하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여행자에게 있어 이런 교과서와도 같은 가이드북을 던져 버리자 비로소 진짜 여행자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했던 작은 나라, ‘벨리즈(Belize)’. 멕시코에서 만난 장기 여행자가 “거북이, 상어, 가오리와 함께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파라다이스”라며 극찬하며 들려준 벨리즈에 관한 이야기에 동물을 좋아하는 나의 상상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 마리 인어가 되리라, 반드시 벨리즈에 가겠노라!” 마음을 먹긴 했으나 인터넷 어디를 뒤져봐도 이 나라에 대한 여행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떠돌고 있는 정보는 제각각이어서 어떤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벨리즈, 북쪽으로는 멕시코, 서쪽으로는 과테말라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온두라스만, 동쪽으로는 카리브해와 접해 있다. 국토 면적 2만 2,963km2(남한의 1/4 정도)에 인구 30만 명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나라는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데 반해 영국의 식민 아래 있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영어를 쓰는 국가다. 인터넷을 떠도는 정보 중 비자를 받는 데 하루 이상이 걸려 국경에서 밤을 지새웠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도 나돌고 있어 내심 쫄았지만, 간단히 비자를 사고(?) 입국 심사 후 무사히 벨리즈시티에 들어설 수 있었다.


[나테한 여행 Tip]
벨리즈, 우리나라 사람이 벨리즈를 여행하기 위해선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비자는 벨리즈 입국 심사 시 여권과 증명 사진 1장, 그리고 50달러를 내면 간단한 서류를 작성 후 30분 내로 즉석에서 받을 수 있다. 출국 시 출국세(약 18.75달러, 2013년 1월 기준)도 있으나 비자비와 출국세 이상의 감동과 추억을 갖고 돌아올 수 있기에 조금은 생소한 나라 벨리즈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벨리즈시티에서 쾌속 보트를 타고 45분을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한 키 컬커(Caye Caulker) 섬. 길다란 타원형으로 생긴 이 섬은 짧은 지름이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고, 긴 지름은 끝에서 끝까지 30~40분 정도면 정복할 수 있는 작은 섬이다.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 전체를 둘러보는 데 두 시간 정도 소요)



가이드북에도 없고, 인터넷에 제대로 된 정보조차 없는 작은 섬 키 컬커, 마치 지도엔 없는 마을처럼 신비로운 이 곳에서 우리는 무려 보름을 넘게 지냈다. 벨리즈는 인종과 종교 구성이 다양한 편 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다. 직접 벨리즈에서 살아본 결과, 그들은 ‘어울리는 척’ 하는 게 아니라 흑인, 백인, 황인종 할 것 없이 얼굴색이 조금 다를 뿐 진짜 그냥 친구로 모두 함께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는 지구상에서 이토록 평화로운 섬이 또 있을까?


사실 벨리즈는 물가가 싼 국가가 아니라서 배낭여행족인 우리에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키 컬커는 첫 날부터 우리를 품에 확 끌어안아 주었다. 인상 좋은 주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경제적인 가격의 안락한 숙소를 만난 건 행운, 주인 아줌마의 동생이 운영하는 다이빙 숍을 만난 건 더 행운이었다. 덕분에 돈 걱정 없이 키 컬커에서의 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던 듯.



숙소에 짐을 풀고, 붉은 석양이 지는 키 컬커의 메인 거리를 지날 때의 일이다. 한 클럽(클럽이라고 해봤자 동네 바 수준) 앞에서 “웨어 아 유 프롬(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묻는 말에 “코리아”라고 대답했더니 대뜸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어준다. 잘 추지도 못하는 춤이지만 신나게 말춤을 한 판 췄더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박수치며 따라 추기 시작한다. 노래가 끝나고… 우리는 키 컬커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키 컬커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가 지나다니는 곳마다 “코리아, 코리아”라며 반겨주거나 심지어 우리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 해주기도 했으니까.



키 컬커 섬에서의 생활은 기대 이상이었다. 홀찬(Holchan), 에스메랄다(Esmeralda) 등 세계의 유명 스노쿨링 스팟에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물고기와 함께 헤엄을 치거나 상어나 거북이를 직접 만져보는 경험은 그 어디에서도 접하기 힘든 신기한 경험이었다. 또한, 벨리즈에는 전세계에 3개 밖에 없는 블루홀 중 하나인 그레이트 블루홀(Great Bluehole)이 있어 전세계 스쿠버다이버들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 세계의 스쿠버다이버들의 꿈꾸는 멋진 다이빙 포인트에 서 있는 것이다. 아뿔싸, 그런데 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없다?!


“여기까지 와서 그 유명한 블루홀도 한 번 못 가보는 건가?” 낙심했으나 다행히도 키 컬커의 다이빙 숍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딸 수 있었기에 눈 뜨면 매일 바다로 뛰어들며 다이빙 자격증을 따느라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사실 블루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기초 단계인) 오픈워터 다음 단계인 어드밴스드 자격증까지 따야했기에 내친 김에 어드밴스드 자격증까지 취득 후 블루홀로 직행. 내 생애 첫 스쿠버다이빙과 세계 스쿠버다이버들이 꿈꾸는 꿈의 다이빙까지 이 곳 벨리즈에서 하게 된 것이다.


[테한 여행 Tip]
벨리즈시티와 키 컬커를 잇는 쾌속선에서 내리면 섬을 바라보고 선 채 오른편은 다소 럭셔리한 호텔형 숙소, 왼편에는 배낭 여행족을 위한 저렴한 숙소와 식당이 있다. 부둣가 바로 앞 작은 농구장을 지나 왼쪽으로 5분쯤 걷다보면 빅 피시 다이빙 숍이 보이고, 그 뒷편에 있는 데이지의 게스트하우스(Dasey’s Guest House)도 찾을 수 있다.


멕시코에서 만났던 한 여행자의 말 한 마디에 오게된 키 컬커였지만, “Go Slow”라는 표어를 쓰는이 섬에서 지내면서 이 곳만의 느림의 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스쿠버다이빙 수업을 제외하고) 키 컬커에서의 생활은 아침 먹고 동네 산책하기, 점심 먹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기, 저녁 먹고 집에 와서 별보며 잠들기가 전부였다. 여행 전 일상에서도, 여행을 다니는 중에도 매일 더 많은 것을 보고 얻기 위해 바쁘게 살아오던 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생활이 익숙했던 건 아니었다.

세상 바쁜 일 없어 절대 뛰는 법도 없고,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화내는 일 없는 이 사람들을 보며 헛웃음만 나올 때도 있었다. 먼 바다에 나가 다이빙 수업을 하기로 약속한 날 아침, 갑자기 배가 고장나 못나가게 됐다며 ‘허허’ 웃으며 대답하는 섬 사람들에게 나는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나도 점점 그들의 삶에 동화되었고, 모든 게 평화롭고 느린 이 섬에선 뛸 일도, 화낼 일도 없어졌기에 거울 속 우리 표정은 한층 여유로워져 있었다.

나는 키 컬커의 푸른 바다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키 컬커의 느림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테한 세계여행]은 ‘나디아(정민아)’와 ‘테츠(오재철)’가 함께 떠나는 느리고 여유로운 세계여행 이야기입니다. (협찬 / 오라클피부과, 대광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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