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회장, 비디오 즐겨 빌려보던 영화광…연체료 40달러 낸 뒤 창업 도전

입력 2014-01-17 06:57  

정액제 동영상 다시보기 대박…'미디어계의 스티브 잡스' 우뚝

창업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DVD 가정배달 회사로 출발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영역 넓혀
세계 1위 비디오점 무너뜨려

오바마도 즐겨 본 드라마
콘텐츠 배달하다 생산까지 참여
1억달러 투자 드라마 대히트
美 최대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



[ 김보라 기자 ]
2013년 실리콘밸리가 뽑은 올해의 최고경영자(CEO) 1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2013년 월가를 놀라게 한 9대 깜짝뉴스 1위. 올해 월가 CEO 중 연봉상승률 1위. 이런 화려한 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은 다름아닌 동영상 스트리밍(다시보기) 서비스 회사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회장 겸 CEO(53)다.

헤이스팅스 회장은 2004년 넷플릭스로 세계 1위의 비디오 대여점인 블록버스터를 파산에 이르게 한 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 ‘미디어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 미국의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한다. 넷플릭스에 월 7.99달러를 내고 스트리밍서비스를 받는 회원 수는 41개국 4000만명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수학 선생님, 영화광인 그는 “남들이 너무 작은 것이라고 생각해 버려두는 사업에서 역발상의 기회를 찾는다”고 말한다.

작은 불만에서 시작한 ‘역발상’

넷플릭스는 헤이스팅스 회장의 작은 불만에서 시작됐다. 1997년 당시 미국 최대 비디오·DVD 대여점이던 블록버스터의 대여료는 1편당 4달러 이하였다. 영화광이었던 헤이스팅스는 어느 날 1.99달러에 영화 ‘아폴로13’을 빌렸다. 하지만 대여 기간을 깜빡 잊은 탓에 며칠 뒤 40달러에 이르는 연체료를 물어야 했다. “원하는 영화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골라 보고 싶다”는 욕망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우선 중앙물류센터를 만들었다. 이후 DVD를 조금 늦게 반납해도 벌금을 물지 않고, 집앞까지 원하는 상품을 배달해주는 회사 ‘넷플릭스’를 세웠다. 아울러 월정액을 낸 온라인 회원들에게는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도입했다.

사람들은 그의 첫 비즈니스 모델을 두고 블록버스터의 대여 모델에서 조금 더 나아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혹평도 쏟아졌다. 하지만 고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헤이스팅스의 ‘파괴적 혁신 전략’은 성공했다.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의 조합으로 탄생한 회사명 ‘넷플릭스’만 봐도 그가 그렸던 밑그림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그는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1997년에는 내가 꿈꾸는 ‘인터넷TV’를 실현하기에 인터넷망 등 주변 환경이 따라주질 않았고, 모든 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는 또 “모든 비즈니스는 10년 뒤를 상상해야 한다”며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이밍의 귀재’ 헤이스팅스 회장의 진가는 창업한 지 10년 만인 2007년 빛을 발한다. 당시 다른 미디어업체들은 영화나 드라마 1편당 돈을 받거나 광고에 기반한 무료방송에 집중하고 있었다. 헤이스팅스는 10년 전 꿈꿨던 ‘넷플릭스’의 모델을 과감히 들고 나왔다. 모바일에서 정액 요금을 결제하면 우수 콘텐츠를 스트리밍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서비스였다. 모바일에서 시작한 넷플릭스의 스트리밍서비스는 TV, 컴퓨터, 태블릿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 모델은 넷플릭스의 기존 사업모델(DVD대여)을 위협할 수도 있는 모델이어서 당시 투자자들이 다 빠져나가고 주가가 30% 폭락하는 등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헤이스팅스 회장은 그러나 “모두가 바보라고 할 때 그 바보같은 짓을 밀어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며 “실제로 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배낭만 메고 아프리카 가봤습니까?”

헤이스팅스식 역발상의 시작은 청년 시절로 돌아간다. 1960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수학에 몰두하는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대형 투자은행과 닉슨 행정부에서 일한 유능한 변호사였다. 그는 “아버지는 늘 경마에서 이기려면 말보다 기수에 베팅하라고 조언했다”며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움직이는 우리 내면의 힘을 믿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바우두인칼리지 수학과에 진학하기 전 1년간 청소기 방문판매 아르바이트를 했다. 헤이스팅스는 “기업가는 꿈꿔본 적도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물건 하나를 팔기 위해 어떻게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는지 배운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헤이스팅스는 해군에서 2년을,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4년을 보낸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2년간 수학을 가르쳤다.

헤이스팅스는 “젊은 시절 돈 몇 푼 들고 아프리카에서 히치하이킹을 해본 사람에겐 어떠한 창업도 그리 큰 도전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혼자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위험의 종류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그는 스탠퍼드 공대에 들어가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딴 뒤 첫 회사 ‘퓨어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그는 넷플릭스를 창업하기 전 이 회사를 팔아 7500만달러를 손에 쥐었다. 일부는 넷플릭스 사업 자금으로, 나머지는 교육 자선단체를 세우는 데 썼다. 그는 “교육의 다른 말은 열정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지금도 여러 자선단체의 강연자로 나서고 있다.

오바마 가족도 즐겨보는 드라마 제작

지난해 헤이스팅스 회장이 월가를 깜짝 놀라게 한 건 새로운 실험 때문이다. 그는 콘텐츠를 실어나르는 배달부에서 콘텐츠 생산자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1억달러(약 1066억원)의 거액을 투입해 한 시즌당 13편으로 구성된 ‘하우스오브카드’라는 드라마를 제작했고, 모든 에피소드를 동시에 공개했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가장 인기를 끈 드라마가 됐다. 에미상 3관왕을 차지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즐겨 보는 드라마’로 꼽았을 정도다. 이 실험으로 그는 미국인들에게 이제 지상파와 위성방송 등을 통하지 않고도 좋은 드라마를 기다림 없이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다.

넷플릭스 주가는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초 주당 90달러 수준에서 연말엔 약 400달러까지 치솟았다. 한때 조그마한 벤처기업이 이제 미국 최대의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한 것. 블록버스터를 파산케 한 데 이어 디즈니그룹, 폭스, 뉴스코퍼레이션 등 미디어 공룡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체스를 잘 두려면 고수들의 게임을 계속 보면서 ‘결정적 한방’이 언제 나오는 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업도 체스 게임처럼 결정적인 베팅을 하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헤이스팅스 회장은 자체 제작한 드라마의 성공에 이어 ‘영화추천 시스템’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의 추천 분류는 30가지 이상. 현재 넷플릭스 이용 고객의 75%는 추천받은 영화를 본다. 그가 생각하는 넷플릭스의 다음 사업은 뭘까.

“넷플릭스를 과거와 비교하면 감격스럽지만, 우리가 생각한 미래와 비교하면 아직 형편없는 모습입니다. 제 머릿속엔 100가지가 넘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단 하나의 철학은 ‘창의적인 변화’ 입니다. 우리는 다른 기업처럼 문제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차와 매뉴얼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매번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것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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